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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뢰 Aug 17. 2024

늦지 않게 너에게 닿기를

사고


 우유 500mL

 백설탕 100g     


까눌레는 이모가 특히 좋아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모양부터 냄새까지 딱 이모 취향이다. 


오늘은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다. 

이모는 볼일을 마치고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기분이 좋을 때 무슨 행동을 하지? 

책에서 보면 노래를 흥얼거린다고 하던데 난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없어서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 

이모와 토스트를 먹고 디저트로 까눌레를 먹을까? 

너무 빵만 먹는 건 아닐까? 


느닷없이 귀가 간지럽다. 

손을 사용할 수 없어 어깨를 위로 올려 귀에 대지만 신통치 않다. 

어쩔 수 없이 손바닥 아랫부분으로 귀를 문지른다. 

오른쪽 귀가 계속 간지럽다. 

손에는 밀가루가 잔뜩 묻어있는데 어쩌면 내 오른쪽 귀에도 방금 손에서 밀가루가 옮겨 묻었을지도 모르겠다. 아…… 어쩌지? 어제도 이랬었는데……. 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오른쪽 귀에서 소리가 들린다. 


쉬익-.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지금 이 느낌이 뭔지 도대체 모르겠다. 

이게 소리인지 공기의 흐름인지 감조차 잡을 수가 없다. 

두 손을 내려놓고 멍하니 시선을 들고 있다. 

오른쪽 귀에서는 계속 같은 것이 들려온다. 


쉬익-. 

나도 모르게 숨이 가빠온다. 

고개를 들고 좌우로 살피지만 조금 전부터 들려오는 낯선 소리 때문에 이곳은 내가 알던 곳이 아닌 것 같다. 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온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왜 그래?’


선생님의 오른손 검지를 그녀의 관자놀이에 대어있다. 

얼굴에는 의아함이 피어올랐다. 

내 얼굴이 어떤 표정인지 모르겠다. 

그녀가 나를 향해 급히 다가온다. 

그제야 내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리대 사이를 요리조리 피해 나에게 다가오는 그녀. 

그리고 바로 그때…….     


적막 속에서 그녀의 뒤에 서 있던 벽이 날아갔다. 

마치 물보라가 치듯이 벽이 날아가며 수많은 회색 가루를 뿌려댔다. 

고요함 속에서 먼지들이 춤을 추듯이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앉았다. 

가루에 눈이 팔렸다가 다시 선생님에게 시선을 돌리자 순식간에 그녀의 뒤통수가 없어졌다. 

머리뿐 아니라 오른쪽 어깨도. 

방금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대고 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던 팔과 손도 없어졌다. 

선생님이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졌다. 

충격적인 장면이 눈에 새겨지고 숨이 막힌다. 


고개를 돌릴 수도 없다.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적막 속에서 남은 사람들이 느린 동작으로 차례차례 사라진다. 

선생님 뒤에 서 있던 계량컵을 주시하던 남학생, 

내 옆 조리대에서 달걀의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하던 여자……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왜…… 왜 벽이 날아간 걸까? 

나는 귀를 막고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는다. 

하지만 허공을 가르는 무언가에 머리를 맞고 그들처럼 정신을 잃는다. 




 나는 지금 아마 잠이 들어있는지도 모르겠다. 

온몸이 나른하고, 힘이 없다. 배도 고프지 않고, 일어나고 싶지도 않다. 

다시 잠을 자고 싶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하고 싶지 않다. 

마지막으로 잠에서 깬 것이 언제였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또 잠으로 빠져든다. 


 “……척추 골절은 크지 않아서……, 어깨뼈가 문제인데……. 

화상 자국도 남아 있는 데다 환자가 젊어서…….”


아득하게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 것 같다. 

이상하다. 기분이 야릇하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가 없다. 

멀어지는 정신을 잡고 있기가 어려웠으므로. 

누군가 내 의식을 자꾸 끌어당기는 것처럼 빨려 들어가고 있었으므로. 

이모 생각이 난다. 이모는 어디 있지?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내 옆에 있을 것이다. 

이모가 보고 싶다.          



 서서히 정신이 든다. 

눈꺼풀을 뜨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어렵게 눈을 뜬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 사방이 깜깜했는데 눈을 떠도 여전히 암흑 속이다. 

눈을 깜박여 초점을 맞춰보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려는데 움직여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의아함이, 그다음에는 더럭 겁이 난다. 


불안한 마음에 눈을 굴리자 어둠 속에서 빛이 보인다.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약한 빛.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불빛을 보자 안도감이 젖어 든다. 

두려움에 방 안을 가득 채웠던 가쁜 숨소리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그제야 여기가 어디인지 눈을 굴리며 위와 옆을 훑어보다가 그것마저 멈춘다. 

방금 내 귀에 들렸던 것이 내 숨소리인가? 


몸을 움직이려 하지만 나는 팔을 들지도, 고개를 돌릴 수도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소리’라는 것이 내 귀를 통해 흘러들어오고 있다. 

작게 헐떡이는 내 숨소리 외에 다른 작은 소리도 간간이 들리지만, 그 소리의 이름을 알 수가 없다. 

이게 소리가 맞긴 한 걸까? 

어린 시절의 나처럼 착각이 아닐까?


어떤 소리가 들린다. 

내 오른쪽으로. 

처음 들어 본 소리는 내게 거리감을 앗아간다. 

오른쪽이 맞는 건가? 뭐가 있는 거지? 

숨소리를 죽이고 난생처음으로 귀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아무래도 문밖에서 나는 소리인 것 같다. 

이어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이 두꺼워진다. 

문이 열린 것이다. 

분홍색 옷을 입은 간호사가 들어와 벽에 붙은 스위치를 켜자 은은한 불빛이 방 안을 비춘다. 

간호사와 눈이 마주친다. 

나는 아무래도 동공이 열려있는 모양이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혈압을 재러 온 건가? 

간호사는 황급히 들어오더니 다급한 표정으로 내 몸 여기저기를 만져보고 살펴보더니 밖으로 나간다.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녀가 뭘 했는지 감도 잡을 수가 없다. 

사박사박. 급한 발놀림. 

아까 들었던 소리와 같은 소리다. 

그 소리는 발소리인 모양이다. 


의료진이 내가 있는 곳으로 물밀듯 들어온다. 

아무래도 여긴 병원인 모양이다. 

그들은 나를 만지고, 들여다보고, 내 몸에 붙은 장비들을 점검하는 등 바쁘다.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아 수화하기도 어렵다. 


이모는? 

낯선 사람들 사이에 이모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 정신을 잃고 누워있었다면 이모가 내 옆에 없을 리 없다. 

수화를 할 만큼 팔을 정교하게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자 답답함이 가슴을 누른다. 

겨우 팔을 움직여 한 사람을 붙잡는다. 

꺽꺽대는 불협화음 같은 목소리가 내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내가 하는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이모는…… 대체 어디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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