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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뢰 Nov 12. 2024

늦지 않게 너에게 닿기를

호두과자

하지만 이들은 결국 찾지 못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서울과 경기도에 있는 아울렛을 주말 동안 돌아보았지만, 석헌의 이미지에 맞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석헌과 파랑, 여리를 태운 비스토는 금방이라도 퍼질 것처럼 털털거리며 달렸지만 

기특하게도 주말 내내 잘 버텨주었다. 일요일 밤이 되자 석헌은 다음 금요일에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 

의령으로 출발했다. 개학 전 황금 같은 주말을 이렇게 보냈다고 여리는 투덜댔지만, 파랑은 걱정이 앞섰다. 


금세 시간이 흘러 금요일이 돌아왔다. 털털거리며 석헌의 차가 파랑의 집 앞에 주차했다. 

일주일 동안 석헌과 파랑은 그 어떤 것도 느끼지 못했다. 여리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석헌과 파랑은 초조했다. 오직 여리만이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여리는 아직 모르는 것이다. 사고를 알면서 막지 못한 죄책감을. 하지만 석헌과 파랑은 겪었다. 

이번에야말로 사고를 막아야 하는데. 그들에게 늦지 않게 닿아야 할 텐데. 


이번에는 망개떡 따위 없었다. 

파랑의 집에 들어선 석헌은 피곤해 보였다. 


 “계속 이미지를 붙잡으려고 노력했는데 인제 그만뒀어. 자꾸 생각하니까 그 이미지에 내 상상이 

덮어진 느낌이야. 이미지가 점점 오염되고 있어서.”

 “나도 그래. 이 소리가 들렸나? 아닌가? 하다 보니까 점점 불확실해지더라고.”


잠자코 있던 여리가 파랑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닫고 들어가는 여리를 보며 파랑이 석헌에게 말했다.


 “여리는 속상해하고 있어. 자기만 아무것도 못 느껴서. 아무 도움도 안 된다고 풀 죽어 있더라고.”

 “속상해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는데.”

 “내일 아침부터 다시 아울렛을 돌아다닐 거지? 오늘은 여리 방에서 자.”

 “혹시…… 날씨 봤어?”

 “날씨? 아니.”

 “도시에서는 날씨라고 해 봤자 고작 우산을 갖고 가냐, 마냐 지만 농사꾼한테는 좀 다르지. 내일 

남부지방은 비가 온대. 의령에서 출발할 때도 하늘이 찌뿌듯했어. 하지만 내가 본 이미지에서 비는 

한 방울도 없었어. 사고가 이번 주라면 남부지방은 아니라는 소리야.”

 “우리는 어제까지 비가 왔는데? 중부지방이라면 우리가 지난주에 거의 다녀왔잖아.”

 “그래, 그래서 미치겠다고. 어디인지 전혀 모르겠어. 아울렛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오빠, 좀 자두는 게 좋겠어. 지금 너무 피곤해 보여.”

 “여리가 살아난 산사태가 생각나서 잠이 잘 안 와. 또 늦을까 봐.”


파랑은 석헌이 안쓰러웠다. 그는 죄책감과 더불어 불안과 싸우고 있었다. 

파랑은 석헌에게 깊은 동료애를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지 없었던 오빠가 생겨 의지할 곳이 있는 것도 기뻤다. 그랬던 그가 힘들어하니 마음이 아팠다. 자신 역시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석헌이 안쓰러웠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자.”


파랑은 석헌에게 이렇게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시계가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침부터 석헌과 파랑, 여리는 비스토를 타고 아울렛을 다시 돌아보고 있었지만, 이미지와 맞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이제 없는 거야?”


여리가 뒷좌석에 앉아 졸린 목소리로 물었다. 


 “응. 여주가 마지막이었어.”


정적이 흘렀다. 이제 어째야 하나. 아무도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잖아. 집으로 돌아가자.”


무거운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은 석헌에게 여리가 말했다. 이들은 여주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여리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해서 잠깐 휴게소에 들렀다. 


 “이번 주가 아닐지도 모르잖아.”


여리가 석헌을 위로하듯 말했다.


 “그래.”

 “그런데 우리 뭐 먹으면 안 돼? 점심도 못 먹었는데.”

 “아……, 그러고 보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저기에서 뭐 좀 사갈까?”

 “응. 나 너무 배고파서 쓰러지는 줄 알았다고.”


파랑은 여리를 달래 휴게소 한쪽에 있는 간식 코너로 데리고 갔다. 

파랑과 여리 뒤로 석헌이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여리야, 먹고 싶은 거 있어?”


파랑이 애써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리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더니 말했다.


 “저거. 호두과자.”

 “호두과자? 호두과자 살까?”

 “응.”


파랑이 석헌을 보며 말했다.


 “오빠도 뭐 좀 먹어야 하지 않겠어?”

 “나는 됐어.”


석헌이 고개를 저었다. 호두과자를 받아서 든 여리는 흡족한 표정이었다. 파랑은 그런 여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파랑 역시 배가 고팠지만 먹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아마 석헌도 같은 마음이리라. 

호두과자 봉지를 부스럭거리며 여리가 차에 올라탔다. 


 “언니, 이거 하나 먹어봐. 맛있어.”

 “음……. 그럴까?”


조수석에 앉은 파랑이 여리에게 호두과자를 받기 위해 뒷좌석으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기다려도 

손바닥에는 아무것도 올라가지 않았다. 의아한 마음에 파랑이 손을 거두고 뒷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여리가 호두과자를 손에 든 채 뭔가를 유심히 보고 있다. 

집중하고 있는 표정이 신기해서 파랑은 여리 쪽으로 더 몸을 기울였다. 여리의 손에는 호두과자를 

넣어두는 종이봉투가 들려 있었다.


 “뭐해, 여리야?”


여리가 파랑의 목소리를 듣고 천천히 눈을 들었다. 대답은 하지 않고 눈만 깜박였다.


 “이제 출발해도 되지?”


석헌이 말했다. 


 “아니, 잠깐만. 오빠, 기다려.”

 “왜?”


다급하게 말하는 여리의 목소리에 석헌도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여리를 바라보았다. 

운전석에 앉은 석헌과 조수석에 앉은 파랑이 모두 상체를 돌려 여리를 보고 있었다. 

여리가 호두과자 종이봉투를 들어 올렸다.


 “이거…… 천안 호두과자래.”

 “응. 알아. 천안 호두과자가 유명하잖아. 휴게소마다 팔고 있는걸?”


석헌이 말했지만 여리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아니야. 언니, 기억 안 나? 천안에 새로 생기는 아울렛…… 있지 않았어?”

 “응? 모르겠는데?”

 “텔레비전에서 봤잖아. 난 기억이 나는데…….”

 “검색해보자.”


석헌이 휴대폰을 들고 검색하기 시작했다.


 “……어제가 오픈이었네.”

 “어제?”

 “응. 우리는 지난주부터 돌아다녀서 몰랐나 봐.”


모두 잠시 말이 없었다. 


 “뭘 망설여? 가자. 천안으로.”


네비게이션의 목적지를 천안으로 설정하며 석헌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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