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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 Dec 31. 2021

20대의 반절

2021년의 성장과 배움

돌아보니 빛났고, 즐거웠고, 무모했고, 또 감사했던 2021년이었다. 학교와 회사를 떠나 홀로 서는 시간 속에서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좋은 인연과 배움을 얻었다.



올해 잘한 일 4가지


1. 꾸준한 배움


5년 정도 머물던 홍대를 떠나 강남 근처로 집을 옮겨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되었다. 온전히 나의 취향과 생활 패턴을 고려한 환경을 만들고, 인테리어 소품, 조명과 가구 브랜드, 소소한 생활의 팁을 공부하며 공간을 꾸려가는 게 즐거웠다. 늘 함께하던 룸메이트가 없으니 집 안에 나 말고 다른 생명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식물에 대한 관심이 생겨 다양한 크기와 종의 식물을 키우는 취미가 생겼다. 모든 식물을 온전히 잘 키워내지는 못했지만 나 아닌 무언가를 세심하게 살피고 돌보는 기쁨을 알아가고 있다. 미래에 공간과 조경 관련된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서 자격증에 관심 가지며 기초적인 이론 지식을 공부하기도 했다.    


퇴사하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자, 아빠와 운전연수를 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몸으로 익혔다. 덩달아 아빠랑 단둘이 있는 시간이 생겨서 서로의 가치관, 취향, 선택, 선택의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대화할 수 있었고 대학생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그동안 딸로서 가족에 소홀했다는 자각이 들어 부모님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찬찬히 살폈고,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두 분께 좋은 아우터를 선물해드렸다.


토스에서 사진에 대한 애정과 사진을 업으로 삼는 것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고, 퇴사 이후 제품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사진을 배웠다. 두 달여간 몸으로 직접 부딪치며 사진 기술과 조명/장비 활용법, 데이터 아카이빙 프로세스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지만, 도제식 소규모 스튜디오의 근무환경과 하루하루 반복되는 촬영 생활은 내가 원하는 일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IT업계의 디자이너로 돌아오는 계기가 되었다. 여전히 사진이 주는 부드러움, 섬세함, 아름다움이 좋다. 좀 더 여유를 갖고 기회를 찾으니 스튜디오에 들어가 일하지 않더라도 사진을 배우고 나의 일에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계속해서 공부하면서 좋아하는 취미이자 일로 이어가고 싶다.


그 외에는 해외공모전, 연말정산, 사업자 등록, 전입신고 등의 절차를 처음 경험했고 친구들이랑 여행, PT, 요리 등 새로운 경험에 도전하며 무언가를 배우는 것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2. 관계


감사를 표현하고,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학교와 회사를 떠난 후 가장 소중하게 남은 건 사람인 것 같다. 졸전을 지도해주신 연준 교수님, 짧았던 인턴 후에도 계속 챙겨주신 유선님, 토스에서 무섭지만 애정 넘치는 사수님이 되어주신 은호님, 지윤님 등 도움받았던 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고마웠던 선배들과 다시 만나 감사함과 그간의 안부를 전할 수 있었다.


반대로 내가 주변 사람들을 도우며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느낀 그들의 장점을 짚어주기도 했고, 내가 잘 아는 분야에 있어서 그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찾아주기도 했다. 취준 기간에는 서로의 서류와 포트폴리오를 피드백하고 채용공고나 이벤트를 보내주면서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응원했고, 실제로 도움이 되었을 때 굉장히 보람찼다.


용기 내어 다가가 인연을 만들고, 콜드 메일을 보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중간에 아는 지인이 없거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게 될 때, 정중한 태도로 자신을 소개하고 설득하며 나를 알리는 연습을 했다. 내가 진심일 때 마음이 전해졌고, 관심을 갖고 연락드린 다양한 프로젝트 팀과 협업관계를 만들 수 있었다.


학교, 회사, 그리고 여러 관계 속에서 웃으며 이별할 수 있을 때 잘 마무리했다. 비단 인간관계 뿐 아니라 내가 몸담았던 공간과 시간과도 이별하는 경험을 했다. 3월에는 5년을 머물렀던 홍대-상수 지역을 떠났고, 8월에는 많은 추억이 담긴 학교를 졸업했고, 9월에는 2년의 계약을 채우고 학교보다 더 정들었던 회사를 퇴사했다. 또한 친구들과의 약속에서도 적절한 때에 잘 마무리하는 건강한 거리를 유지했고, 끝이 좋아야 좋은 마음으로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3. 내적 성장


어느 순간 나 스스로에 대해 받아들이고 편안해졌다. 늘 잘했던 것도, 늘 못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많은 시간 스스로에 대해 엄격하고 모질었던 것 같다. 나로서 20년 넘게 살아왔지만 나에 대해 알고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내가 바라는 지향점을 찾고 스스로를 바꾸어나가는 데에도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다. 이를테면 무언가 시작은 잘하지만 빨리 질리거나 포기하는 내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는데, 나에게 버거운 것들은 쉽게 내려놓는 반면 좋아하는 것들은 놀랍도록 꾸준히 해내는 나의 모습 또한 발견할 수 있었다. 돌아보면 학교도, 운동도, 사진도, 토스에서의 시간도 정말 좋아했다. 앞으로도 좋아하는 것을 많이 만들고, 지속하고 싶다.


경험이 쌓이는 만큼 여유와 지혜가 생기는 것 같다. 최선을 다했지만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며 조급함이 줄었고, 불가능할 것 같던 일들이 일어나 뭐든 도전해보고 끝까지 해봐야 한다는 마음도 생겼다. 삶의 과제들을 통과하고, 다음 목표와 방향성을 설정하면서 인생에서 행복이 무엇일까 고민했던 적이 있다. 김경일 교수님의 <적정한 삶>에서 조언을 많이 얻었는데, 여정으로서의 인생 속 무언가를 알아가는 즐거움, 의미와 보람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어떤 걸 할 때 기분이 좋고 만족감을 느끼는지 정확히 알면, 보다 효율적으로 행복을 찾을 수 있으며 그게 적정하고 지혜로운 삶이라고 한다.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늘 무언가 배우며 소망이 있는 사람, 위시리스트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뚜렷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는 건 좋지만 반면에 고집과 선입견을 생기는 것을 경계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갓 졸업하고 사회인으로의 첫 문턱을 넘었을 뿐, 나만의 사고의 틀에 갇히지 않게 조심해야겠다.


마지막으로는 혼자인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올해 특히나 나에게 집중해 내 상태와 기분을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커리어나 가치관, 내면에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학생 때는 늘 주위에 친구들이 있었고 많은 시간 즐거웠지만 스스로 깊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탓에 나 자신보다 주변을 더 의식하거나 사람에 의존적인 성향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스웨덴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며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졌고, 한국에 돌아와서 점차 함께 있을 수 있을 때 함께하고, 혼자 또한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공허할 때 누군가를 나의 집에 초대하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고, 나의 내면이 확고하고 단단하면 나도 주변에 더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배우는 중이다.



4. 커리어 방향성 설정 


모든 게 연결성을 갖고, 그 다음이 생긴다. 첫 단추는 생각보다 중요했고 나의 첫 단추가 되어준 학교와 회사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퇴사 이후 시간을 갖고 그동안의 업무 성과와 잘한 점, 아쉬운 점에 대해 돌아보았다. 떠날 때 팀원들이 적어주신 롤링페이퍼 편지를 다시 읽어보고 작업을 정리하면서, 그간 울고 웃으며 성장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1) 토스에서 만난 인연들


회사가 커지는 동안 짧지 않은 2년의 시간 속 나의 자리를 지키며 많은 사람들과 함께했고, 어시스던트 친구들과 디자이너 선배들, 동고동락한 컴즈팀 콘텐츠팀분들, 오고 가며 친구가 된 다른 팀 분들 등 우연한 기회로 좋은 동료들을 얻었다. 휴학, 복학, 방학, 시험, 졸전, 이사 그리고 졸업까지 학생 때의 모든 이벤트를 팀원분들과 함께하며 가까이서 보고 배웠고, 지금의 내가 되는데도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처음부터 업무를 함께했던 혜원님, 지영님, 인욱님의 칭찬과 리액션 덕분에 늘 더 잘하고 싶었고, 용기와 욕심이 생겨 실제로 점점 더 잘할 수 있었다. 회사 안에서 긴장하고 어설펐던 내가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하고 협업하는 방법 등을 배워갔고, 어느 순간 환경에 적응해서 새로 온 팀원들의 온보딩을 도와주는 역할 또한 경험할 수 있었다. 현님, 수아님, 경화님, 현지님, 준수님, 진호님, 현진님이 차례로 오시며 팀은 더욱 북적이고 따뜻했고, 더 다양한 콘텐츠를 시도해볼 수 있었다. 진호님께서 새벽에 부탁하신 보도자료 디자인 때문에 사주신 소고기도 생각나고, 순도님 태성님 창선님 오시고 4층 사무실이 더 즐거워졌던 기억에 아직까지 웃음이 난다. 조금은 무섭고 어려웠던 기열님은 2021년 상반기를 정리하는 위클리에서 팀원들에게 하셨던, 일을 오래 해서 이제 성과에서는 별로 즐겁지 않아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즐거워하는 게 더 기쁨이라고, 언제든 도울 것이니 자신을 찾아달라는 말씀에 가슴 깊이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커싸 다애님, 애진님, 유진님, 찬미님, 송이님, 서아님, 광민님, 한솔님, 혜민님, 현욱님 등등 모두 다 말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분들이 늘 따뜻하게 반겨주시고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주셔서 회사에 가는 게 행복했다. 어시스던트로 함께했던 소정님, 한아님, 지우님, 수민님, 소영님, 준호님, 희원님, 윤경님, 지화님, 윤주님, 윤지님, 예샘님, 세희님과 회사 생활 속에서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며 전우애를 다지기도 했고, 지금은 각자의 영역에서 서로를 응원하는 친구들이 되었다.


(2) 업무적인 성장


업무적으로는 인포그래픽, 사진, SNS, 일러스트, 웹 섬네일, 채널 아트 등 점차 스스로의 업무 범위를 확장하고 조직 속에서 일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 기간 팀원분들과 합을 맞추며 신뢰를 얻고, 토스피드를 기반으로 다양한 채널들을 만들어가며 부족한 부분들 찾아서 개선하고 업무의 퀄리티와 속도를 높일 수 있도록 노력했다. 토스의 콘텐츠와 대외 이미지 등 다양하고 포괄적인 영역에서의 디자인에 기여하며 회사에 대한 애정이 커졌으나,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 규모 속 변화하는 시스템과 제한된 권한, 역할의 한계에 혼란스럽기도 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부족하지만 팀에서 필요로 하는 영역 사이에서 내가 스스로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 괴로웠던 적도 있었지만 강점을 더 살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3) 시행착오


내가 디자인을 하고 싶은지, 사업이 하고 싶은지, 프리랜서가 되고 싶은지, 대기업에 가고 싶은지, 그냥 돈만 많이 벌고 싶은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사업자 등록을 해서 아이템도 찾아보고, 자격증 공부도 해보고, 대기업 원서도 써보고, 사진 스튜디오도 가보고 직접 부딪치면서 내가 정말 원하는 길을 찾아 나섰고 돌아 돌아 내가 생각보다 디자인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내가 어떤 직무를 잘할 수 있을지, 어떤 산업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회사를 가고 싶어 하는지 고민했다. 정말 아니다 싶은 스튜디오의 환경에서 일해보니 반대로 내가 원하는 회사의 조건이 뚜렷해지고 나의 강점과 성향을 파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IT기업의 문화와 사람들, 자율성, 속도, 합리적인 업무 방식을 일찍 접했고, 멋진 디자이너 분들의 작업을 어깨너머 구경하면서 좋은 디자인에 대한 기준을 높이고 시야를 확장할 수 있었다. 금융 컨텐츠 기반의 디자인을 경험해보니 금융이 아닌 다른 산업에서의 일도 궁금했고, 콘텐츠/마케팅팀이 아닌 디자인 팀 안에서 일하며 서비스 메인이 되는 그래픽을 만들고도 싶었다. 


부단하게 여러 기업에 서류를 내고 내가 원하는 조건과 기업이 원하는 조건을 맞춰보던 중에 가게 될 회사를 찾았고, 인터뷰 때 함께 일할 분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곳에서 일하는 게 기대가 되었기에 다음 정착지로 결정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굉장히 무모하고 불안하고 막연했던 한 해였지만 나에게 있어 꼭 필요한 과정이었고, 고민한 끝에 최선의 결과로 돌아온 것 같아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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