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3개월 차 주니어 디자이너 기록
순식간에 3월이 끝나가고, 짧게나마 기록해둔 이런저런 생각들을 모아.. 요새 근황!
3월 마지막 주 즈음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목이 조금 불편하고 미열이 있었기에 혹시 오미크론에 걸린 것일까 봐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자가 키트를 사서 검사해보니 음성이었다. 약국 약을 사서 먹으며 하루 동안 지켜보다가 다음 날 병원에서 신속항원검사를 했는데 다행히도 음성이었다. 그 주에 이전부터 기대하던 모임이 여럿 있었기 때문에 확진이 아니었으면 바랐다. 가까운 사람들이 확진되고 격리생활을 하는 것을 전해 들으며 이제는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감염이 무서워 사람을 만나지 않고 언제까지 생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걸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없는 상황에서 그냥 최대한 걸리지 않길 바라며, 또는 걸리더라도 많이 아프지 않길 바라면서 조심스럽게 생활하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다. 건강하게 살려고 노력해서인지, 운이 좋았던 건지 아직까지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지내고 있다.
이번 분기에 기억에 남는 키워드 :
1월 중순부터 친구랑 서로의 집 중간쯤에 있는 테니스장에서 2:1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작년에 수아님, 현님 점심시간에 운동 다니는 것 보면서 취직하면 꼭 배우고 싶은 운동으로 적어뒀는데 드디어 하고 있다. 그리고 테니스는 비싼 운동이라는 것도 실감하고 있다.. 얼른 늘어서 야외에서 경기도 하고 동호회도 들어가고 싶다.
운전에 대한 자신이 점점 붙고 있다. 제주도에서 3박 4일 내내 운전하고 다니면서 정말 많이 늘었다. 해안도로, 제주 도심, 무서웠던 공영주차장까지 골고루 다니면서 서울 돌아가면 혼자 운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빠랑, 그리고 친구들이랑 같이 가볼 근교 이곳저곳 리스트업 해뒀다. 오늘 회사 친구랑 얘기하다가 운전에 자신감이 붙을 때가 가장 사고 많이 나는 때라고, 조심하라고 했다.
회사에서 받은 어학 지원금으로 집 근처 스피치 학원에서 보이스 수업을 듣고 있다. 평소 입을 크게 벌리는 걸 귀찮아하고, 설명을 짧게 하는 편이라 살면서 대충 말하는 나의 습관 때문에 고생하기는 했다. 스스로도 같은 말을 반복해 이야기하는 상황이나, 좀 더 공적인 자리에서 말하기를 위한 개선이 필요할 것 같아서 영어보다도 우선적으로 스피치를 배우고 있다.
내 목소리에 대해 주목하고 다시 들어보면서 문제점을 고치려는 노력은 처음이라 재밌고 또 어렵다. 예를 들면 말할 때 발음을 신경 쓰는 것, 말 끝을 흐리지 않는 것, 주장에 대한 적절한 근거와 부연 설명이 논리가 맞게 이야기하는 것, 같은 표현 반복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서 말하는데 신경 쓸수록 나아지는 게 보인다. 그냥 말수가 더 줄었을지도.. 아나운서가 말하듯 내 말에도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더 똑똑하고 똑부러지게 말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양쪽 위아래 사랑니 4개를 다 뽑았다. 보통 치과 말고 사랑니 전문 치과를 갔던 게 올해 가장 잘한 일 best 5안에 들 것 같다. 가만히 있는 이는 1분 안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이는 길어도 3분 안에 뽑아주신 사랑이 아프니 치과를 적극 추천한다. (예약이 조금 힘들 수 있지만 평일 10-11시에 취소 자리가 많이 나오더라.)
입사한 지 벌써 3개월이 되었다. 일이 바쁠 때도, 한가할 때도 있었기에 시간이 빠르기도 느리기도 하다. 이제 좀 적응했고,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처음에는 외로웠던 재택근무도 그새 익숙해졌다. 아침저녁으로 나갈 준비나 출퇴근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많은 에너지를 아끼고,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쓸 수 있음의 이점을 느낀다. 굳이 요리해서 아침, 점심 식사를 빠르게 챙기는 것도, 집중력 유지를 위해 공간을 옮겨 근처 카페에서 일하는 것도, 스스로 느끼기에 이보다 자유롭고 편할 수가 없다. 첫 달에는 버벅대고 시간을 잘 못 지켰던 줌 미팅도 이제는 요령이 생겨 미팅 10분 전 먼저 들어가 있거나 슬랙에 구글 캘린더 연동하면 1분 전 알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옆에 앉아 대화할 동료들이 없다면 그걸 채워줄 수 있는 디지털 콘텐츠를 찾아서 읽고 보고 들으면 된다. 사람이 만나고 싶으면 퇴근하고 약속을 잡거나 그때 그때 연락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거나 뭔가 표현하고 싶거나 상호작용이 필요할 때는 인스타그램을 이용하면 된다. 이 생활에 점점 더 익숙해질수록 대면 근무가 더 번거롭고 불필요하다고 느낄 것 같다.
취준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이 선택이 최선이었을까 고민했던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3개월을 채운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고, 어느 회사에서도 경험하지 못할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이기에 나에게 주어지는 자율적인 환경, 내가 하는 만큼 쌓이는 신뢰의 자산, 나이나 연차에 상관없이 역량과 욕심에 따라 맡을 수 있는 프로젝트 기회가 있다. 또한 아직 말랑말랑한 땅에 가까운 지금의 브랜드 단계이기에 우리가 어떤 브랜드인지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낼 수 있고, 본질은 지키면서도 소통, 표현의 방법, 아이디어 등을 다양하게 열어두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있다. 인터뷰 때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했던 디자인 리더의 말씀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기대하고 들어오면 아직 쌓인 게 많지 않은 현 상황에 실망할 수 있지만, 함께 브랜드를 만들어간다는 연대감을 느끼며 규칙을 따르기도, 바꾸기도 하면서 브랜드를 쌓아가는 재미를 찾을 수도 있는 것 같다.
소수의 인원이기 때문에 한 명 한 명의 의견과 역량이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을 통해 새로 만난 사람들,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디자인팀 팀원들과 매니저님,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형성되는 팀의 분위기가 나에게 잘 맞는 것 같다. 그 안에서 나의 역할을 찾아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맡고, 역량을 키우고, 영향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즐겁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여러 가지 디자인을 시도해볼 수 있고, 내가 노력하는 만큼 피드백이 돌아오고, 조직 단위에서 개인의 성과가 잘 드러나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만족하고 있다.
첫 3개월간은 내 강점이라 생각하는 브랜딩과 사진 업무를 맡아하면서,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 가이드라인/템플렛 구축 프로젝트 또한 병행할 수 있어서 좋았다. 넓은 범위의 디지털 브랜딩을 진행하면서 채용 캠페인 아트 디렉션, 원티드 회사 소개 사진 촬영, 블로그 콘텐츠 커버 그래픽, 리쿠르팅 이메일 디자인, E-Book, Deck 그리고 브랜드 포토그래피 가이드라인과 에디토리얼 템플렛 작업, 온보딩 노션 페이지 디자인 등의 업무를 해볼 수 있었다. 또한 토스에서 토스피드 작업을 하면서 나도 언젠가 회사 블로그에 필자나 인터뷰이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채용 캠페인을 기회로 이번에 아티클을 쓰게 되었다.
외국계 기업에,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디자인을 경험하면서 내가 알던 세상이 점점 더 넓어지는 느낌이다. 신기하게도 간간히 외국계 스타트업 다니는 친구들을 만났다. 주변에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인스타그램을 통해 스픽에 다니는 디자이너 친구도 새로 사귀고, 알고 보니 몰로코에 다니고 있던 초등학교 동창도 만나게 되었다. 우연이 만드는 인연들에 또 재미를 느낀다.
요새 노잼 시기가 올 뻔해서 더더욱 같은 일도 재밌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다녔다. 집 앞 일하기 좋은 카페를 찾아 사람들이 많이 안 오는 시간에 늘 앉는 자리에 가서 앉아 일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받을 때, 도전적이고 어려운 과제를 잘 해냈을 때, 일을 통해 팀원들한테 인정을 받을 때, 발표 스킬 자체가 늘었다고 느낄 때, 잘 못하던 걸 점점 잘하게 될 때, 팀원들과 문득 농담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해진 게 느껴질 때, 그날따라 부스터가 달린 듯 일이 빠르게 잘 될 때 등등 재미를 느끼는 순간들을 잘 기록해두고 필요할 때 꺼내보면서 재미의 수치를 조절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어엿한 직장인이 되어 점차 자신감을 회복하게 된 나.. 전에 다니던 회사 사람들과 종종 만나면서 이제 더 떳떳하게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새삼 다행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기쁘고 슬펐던, 따뜻하고 치열했던 그 시간을 거쳐서 다음 단계로 왔다. 나에 대해 더 뾰족해진 부분이 생겼고 무엇보다 사람들을 얻어서 가장 기쁘다.
날씨도 봄이 오는 것 같다. 중간고사도, 취직에 대한 걱정도 없는 자유롭고 홀가분한 봄은 처음인 것 같기도! 날 좋을 때 이리저리 카페 찾아다니며 일할 생각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다음 분기에는 C4D, 영어, 독서를 중점적으로 하면서, 정량적인 양을 기록해보면 어떨까 싶다. 날씨가 좋을 테니 야외에서 테니스도 치고, 등산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개인의 삶을 놓고도 우리는 회고할 수 있다. 좋았던 일을 나열하고, 그 일이 왜 좋았는지 스스로에게 이유를 물어본다. 아쉬웠던 일들을 나열하고, 그 일이 왜 아쉬웠는지 스스로에게 이유를 물어본다. 그리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의 과녁, 내 삶이 흘러가고 싶은 방향을 기준으로 내가 나열한 일들과 그 이유들을 다시 살펴본다, 그러면 어떠한 일들은 내가 생각했던, 느꼈던 것보다 더 좋은 일일 수도 있고, 덜 좋은 일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떠한 일들은 더 아쉬운 일일 수도 있고, 덜 아쉬운 일일 수도 있다. 이러한 회고를 통해 내 삶에 대한 판단 기준이 오롯이 내 안에서 비롯되어 세워진다. 다음 액션을 결정하는 기준 역시 마찬가지이다. 결국 내가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과 끝 그림을 과녁 삼아, 현재의 나를 끊임없이 영점 조절한다. 그리하여 내 몸과 마음, 그리고 내 삶을 경영하는 가장 작은 방법이 된다.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김진영
이런저런 일들 많던 이번 분기 가장 좋았던 구절들! 4월에도 행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