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이야기
뭐부터 써야 하지. 일단 이 백지를 보면 멍해진다. 그동안 있었던 일이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글 건더기로 끌어올리자니 너무도 작고 하찮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단 끄적여보겠는데 그러다 보면 생각나겠지. 그게 바로 모닝페이지니까. 근데 모닝페이지라고 하기에는 벌써 11시 49분이다. 요즘 참 모닝이 늦다. 나의 루틴 중 제일 첫 번째는 새벽기도인데, 새벽이 아닌 아침 아니 거의 점심기도로 바뀌기도 한다. 부지런한 삶이 이리도 힘들었던 것인가. 나의 삶의 의외로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게 있다면 그건 새로운 게임이다. 고놈의 게임만 안 해도 많은 것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인데 말이다.
처음 시작은 인스타그램 피드를 미리 짜볼 수 있는 "Feed Preview"라는 앱에 나오는 광고 때문이었다. 나사를 푸는 게임이 나왔다. 광고인데도 게임을 해볼 수 있었는데 광고인 것도 잊고 게임에 집중했다. 근데 실패로 끝날 때가 많아 더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67단계까지 와버렸지. 게임 방식은 이렇다. 자전거, 집, 전화기, 자동차 등등 입체적인 모양의 사물이 있으면 나사가 콕콕 박혀있다. 겉의 나사를 풀어야 레이어로 겹쳐진 속이 양파같이 계속 나온다. 정해진 색깔의 나사만 풀어야 하고 360도로 회전이 가능해서 이리저리 돌려가며 나사를 푸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실 액션게임 이후로 이렇게 게임을 해본 적이 없는데, 게다가 게임하는 사람을 이해 못 하던 사람인데, 지금은 틈만 나면 잡고 있다. 특히 한 레벨을 깨지 못하고 밤에 잠드는 것만큼 찜찜한 일이 없을 정도다. 아무튼 이 게임의 이름은 Screwdom 3D다. 절대 빠지지 마소서.
첫 공과금이 날아왔다. 아직 등록하지 않아서 고객명이 ㅇㅇ마을의 우리 주소로 적혀있다. 마을이란 말이 정겹고 귀엽다. 약간의 냉기가 드는 안쪽 창을 열고 바깥 창으로 보이는 건너편 숙소의 빨간 벽돌도 흐리흐리한 구름 사이로 해가 숨었다 나왔다 하는 하늘, 종종 지나다니는 자동차도 귀엽다. 아 다 귀엽네 증말. 서울 빌라가 아닌 지금 제주에 있구나 하고 조금 실감이 난다. 화요일 12시 13분에 마음에 드는 음악을 실컷 틀 수 있고, 같은 작업실이지만 다른 책상에 앉아 각자 할 일을 하는 삶이 좀 많이 좋다.
사실 지금도 나사 게임이 당기지만 마음을 다잡아 본다. 오늘 할 일이 많으니까. 우리에게는 시간과 돈이 없다. 물리적 시간은 많지만 돈을 벌어야 하는 주어진 시간은 없다. 마지노선을 정했다. 노마드한 삶을 살아보자는 다짐은 돈이 있을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니까. 일단 나 몰라라 내동댕이 치고 꾸려왔던 삶을 내던지고 왔으니 악착같이 해봐야지. 그게 아무리 나사게임이어도 나를 방해할 수는 없다. 아 그렇다고 삭제를 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자기 전에만 하기, 하트 끝나면 광고 보고 하나 더 얻지 말고 무조건 눈 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