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꽃, 비
봄은 확실히 꽃의 계절인 것 같다. 36장짜리 필름 대부분이 꽃 사진이니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아름답다고 느끼는 대상이 달라지는 것 같다. 지금 보다 더 어릴 때는 꽃을 보고 감탄사를 내뱉기는 커녕 꽃을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고 닭살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봄이 좋아졌다. 봄과 꽃, 그리고 비.
이젠 녹음이 짙어지면서 알록달록한 봄의 색을 느끼긴 힘들어졌다. 또 봄을 맞이하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하는구나. 봄이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나는 녹색을 좋아한다. 특히 녹음이 짙은 도시의 가로수. 이날은 초록색과 벚꽃의 흰분홍, 개나리의 노란색이 눈에 들어왔다. 딱 4월에 즐길 수 있는 색들.
이 사진을 보니 '곧 더 더워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벌써 걱정이 된다.
1년 만에 온 외할머니댁. 남쪽 지방에 계셔서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 이제 나이 탓에 혼자 계시기 힘드실텐데...멀리서 온 손자를 보신다고 한달음에 달려나오신다.
생신잔치를 하고 집에 가기까지 시간이 남아서 오랜만에 외할머니댁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사진에 담았다. 외할머니가 안계시면 이 집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집은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닌 역사를 품고있는 공간이다.
역사를 이어갈 수 있게 사진으로 남긴다.
거동이 불편하신 외할머니는 마당에 있는 빨랫줄을 이용하시지 않는다. 옛날에는 사용하셨던 기억이 난다.
이날은 비가 와서 오래 방치된 빨랫줄이 빗방울이 맺혀 있었다.
찍은 기억은 없지만, 필름에 남아있던 사진.
이 공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면 늘 서럽다.
이름 모를 꽃들. 아직 만개하기 전 새생명의 기운이 팔딱이고 있는 듯해 필름에 담았다. 봄엔 뭘 찍어도 기분이 좋구나.
20대 총선날 찍은 사진이다. 모교인 시곡초등학교에서 투표를 하고 나오는 길에 화단에서 복숭아같은 수줍움을 내뿜고 있는 목련을 마주했다. 참 기분 좋다. 봄의 수줍움과 살레임이 담겨있는 것 같다.
총선날이라 설치해뒀나. 동사무소 뒤 태극기.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
파주 오산리 기도원은 늦은 시기까지 벚꽃놀이를 즐길 수 있다고해 찾았다. 그 말은 실제로 그랬고, 파주를 마지막으로 꽃놀이를 마무리했다.
올해 나의 봄을 풍성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해준 곳
캐논 AE-1 / AGFA VISTA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