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라오스! 예능 프로보고 결정했다

봉사와 여행, 그 어디쯤에 있던 7박 8일

by Moso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라오스 곳곳을 소개했다. 화면을 보고 있자니 나도 혹해서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들도 하나둘 라오스에 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학부모의 문의도 있었다.

“선생님, 이번에 봉사활동 어디로 가요? 라오스는 안 가나요?”


3명의 엄마, 그리고 초등 저학년 아이들 7명으로 구성된 봉사단은 라오스로 향했다. 학부모들과 함께해서 불편하지 않겠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동안 아이들을 스스로 해외 봉사에 보내기도 했고, 국내 캠프에 참여시킨 경험이 있는 엄마들이었기에 누구보다 봉사활동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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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는 모계사회 국가이다. 가부장적인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문화다.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은 대부분 여성들이 결정하고, 남성들은 그 결정에 따른다. 자녀 양육 역시 엄마들이 주도적으로 맡는다. 부모를 더 오래 돌볼 수 있다는 이유로 재산을 막내딸에게 물려주는 상속 문화도 있다.


“우리 라오스에 살까? 여자들이 더 힘이 있는 나라니까 좋잖아.”

“엄마, 아빠가 없는데 어떻게 살아?”

모녀의 재미난 이야기가 들렸다.


매번 혼자서 학생들을 챙기느라 분주했던 공항에서 이번만큼은 너무나 여유로웠다. 학생이 7명이니, 엄마들이 자연스럽게 두 명씩 맡아 주셨다. 특히 감사했던 건, 각자 자신의 자식은 맡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엄마다 보니 내 아이만 챙기게 될 것이라며 배려해주신 그 마음에 울컥했다.


항상 그렇듯, 비행기표를 여권에 넣어 준 후 입국 심사까지는 전쟁이다. 조심성이 없는 아이들은 어느새 표를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평소 같으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찾기 바빴겠지만, 이번엔 엄마들이 꼼꼼히 챙겨 주셨다. 내가 이렇게까지 편해도 되나 싶을 만큼 든든했다.


수업을 진행할 교실로 향했다. 저학년 아이들이라고 들었는데, 고학년이나 심지어 중학생처럼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라오스에는 유급생이 많다고 했다. 집안일을 도와야 해서 출석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통역이 설명해주었다. 엄마들은 그 상황을 안타까워했지만, 어린 학생들은 그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들과 함께한 봉사가 늘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학생들이 스스로 경험해야 할 일들 앞에서, 조금이라도 힘들어 보이면 엄마들이 먼저 손을 내밀곤 했다.

“학생들 스스로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어려서 이거 할 수 있겠어요?”

그럴 때면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어머님이 안 오셨으면, 아이가 혼자서 해냈을 일이에요.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이해가 엇갈리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공감해 주셨고 마음을 모았다.


학교 한켠에서는 엄마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양념과 재료로 불고기와 김밥을 준비했다. 부족한 재료와 식기는 현지에서 마련했다. 늘 해오던 음식이지만, 라오스 아이들의 입맛에 맞을지 걱정도 되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잘 먹겠습니다’라는 인사를 가르쳤다. 교실로 들어선 엄마들에게 라오스 아이들이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외쳤다.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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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은 맛있게 음식을 먹는 아이들과 학생들의 모습을 흐믓하게 바라보았다. 부족하다는 학생들의 빈 그릇을 계속 채워 주었다. 혼자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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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라오스 좋네요. 우리 아이들과 같이 봉사 하니 더 좋아요.”

라오스의 한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엄마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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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 함께 풍선 터트리기를 시작했다. 아이들은 금세 들떴고, 넘어진 친구를 라오스 아이들이 조심스레 일으켜 주었다. 서로를 껴안은 채 풍선을 터트릴 땐, 귀를 막아주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풍선이 좀처럼 터지지 않아 더 꼭 끌어안을 때면, 세상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백만 불짜리 웃음이 피어올랐다.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었다. 라오스 아이들이 학생들을 목말 태우고, 업어주며 한마음으로 뛰놀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안심했다. 혹시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던 마음은 어느새 씻기듯 사라졌다. 내 염려보다 아이들은 훨씬 속 깊고, 따뜻하게 서로를 살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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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수업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가르치고 배우는 역할을 자연스럽게 나눴다.

“선생님, 얘 한글 읽어요.”

한 아이가 놀라며 외쳤다.

“얘가 아니고, 오빠야!”

(외국에 나오면 학생들은 서열이 없어지는게 신기했다.)

“윤지가 잘 가르쳐서 그런 거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얼굴에 땀이 맺히도록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쳤고, 그 진심은 분명히 전해졌다.


아이들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장난감, 용돈을 모아 사온 간식, 그리고 수업 시간에 틈틈이 배운 한글로 정성껏 편지를 써 주었다. 아무것도 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학생들은, 색종이 접기 시간에 배운 하트에 마음을 담아 편지를 적어 건넸다. 늘 받기만 했던 학생들이 스스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모습이 참 대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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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라오스에서 살 거야.”

“아빠 없는데, 괜찮아?”

“응! 언니, 오빠들이 나 진짜 잘 챙겨줘. 살 거야!”

엄마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 너머로 아이가 진심으로 라오스를 즐기고 있다고 느껴졌다.


한 손에 차고도 넘칠 만큼 지폐를 쥐었다. 혹시나 땅에 떨어질까 봐 조심스럽게 들었다. 각 나라에 가서 캠프를 시작하기 전 환전을 한다. 지폐 모양은 나라마다 제각각이었지만, 동전이 없고 화폐 단위가 작아 이렇게 많은 돈을 눈앞에 본 건 처음이었다. 50만 원이 어림잡아 50억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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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봉사가 끝나고 2박 3일 라오스 볼런투어를 시작했다. 학생들보다 엄마들의 얼굴에 여행에 대한 설렘이 가득했다. 그 설렘은 금세 바뀌었다. 우리가 머물던 비엔티안에서 라오스의 핫플레이스, 방비엥까지는 약 150km. 길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산길은 심하게 굽이쳤고, 차량은 끊임없이 좌우로 흔들렸다. 아이들은 멀미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여행의 시작은, 기대보다는 고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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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을 달려 도착한 방비엥. 모두가 힘든 여정을 잊을 만큼 신나게 하루를 즐겼다. 산을 한 시간가량 올라 탄 짚라인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 스릴 넘치는 경험이었다. 그 뒤로는 한국의 짧은 짚라인이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TV에서만 보던 방비엥의 블루라군에서도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웃음소리가 끝없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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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길게만 느껴졌던 7박 8일의 일정이 어느새 끝나가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소중한 기억으로 쌓였다. 마지막 날이 가까워질수록 마음 한켠에는 아쉬움이 자리 잡았다. 함께한 학생들의 순수한 웃음소리, 엄마들의 따뜻한 손길, 그리고 라오스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낸 잊지 못할 순간들이 가슴속 깊이 포근하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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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아이들이 왜 봉사활동 간다고 하면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제 알겠어요.”

함께한 학부모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집에선 샤워하라고 세 번은 말해야 겨우 움직이던 애가, 여기선 일과 끝나자마자 스스로 씻는 게 신기했어요.”

“좋은 거 생기면 먼저 가지겠다고 늘 오빠랑 다투더니, 여기선 먼저 양보하더라고요. 그게 더 놀라웠어요.”

“학교 일기 쓰는걸 그렇게 싫어 하면서, 매일 쓰는 일지는 어떻게 그렇게 쓰는지.”


“그렇죠. 집에선 마냥 어린아이 같지만, 이곳에 오면 선생님이 되잖아요. 모든 걸 혼자 해내고, 안 되면 다시 도전해서 결국 성공했을 때의 희열을 알아가는 것 같아요.”

“사실 어른들도 소화하기 벅찰 정도로 빡빡한 일정이었는데, 뒤처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아이들이 정말 신기했어요.”


서로 다른 문화와 배경 속에서 부대끼고, 웃고, 배우며 쌓아올린 시간은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소중했다. 아이들의 눈동자 속에 비친 호기심과 설렘, 엄마들의 따뜻한 격려, 그리고 라오스 아이들의 맑고 순수한 마음.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우리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따뜻한 온기로 남았다.


‘봉사’라는 단어는 단순히 누군가를 ‘돕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서로에게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되며, 또 다른 배움이 되는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건넨 도움보다 오히려 내가 받은 사랑과 깨달음이 훨씬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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