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손으로 지은 초원위의 집 한채
이른 아침, 게르 앞에서 다음 일정을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곳저곳을 살폈다.
“선생님, 이 게르 진짜 커요! 저희가 만든 거보다 훨씬 크죠?”
“응, 게르는 크기에 따라 소, 중, 대로 나뉘는데, 우리가 묵는 건 대형 게르래.”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게르도 제법 괜찮았다고 느낀 모양인지,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말을 타러 갈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의 발걸음에 기대가 묻어났다. 광활한 초원이 눈앞에 펼쳐지고, 그 위로 말 한 마리가 시원하게 달려 나갔다.
“와우.”
“대박.”
“완전 멋있어요.”
학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초원을 가로지르며 질주하는 몽골 관계자의 모습은 마치 승마 경기를 연상케 했다. 그동안 몇몇은 승마 체험을 해본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마부와 함께 승마장 주변을 천천히 도는 정도의 경험뿐이었다. 이곳, 넓은 초원을 품은 몽골은 전혀 달랐다.
학생들도 말 위에 올라 초원으로 들어섰다. 물론 관계자처럼 멋지게 달릴 수는 없었지만, 이곳은 말 그대로 자연이었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두 명당 한 명의 마부가 줄을 잡고 함께 이동했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모두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숲속 개울가를 지날 때, 말이 물을 마시려 살짝 움직이기만 해도
“어~~~”
“아~~~”
하는 비명 섞인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말이 똥을 싸려고 멈춰 서면, 순간 얼음이 되어 말 등에 납작 엎드리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무서움을 즐기며 더 크게 웃는 학생도 있었다. 그저 걷고 있는 것뿐인데도, 초원에서의 승마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기억이 되었다.
몽골에서는 개인이 원하는 지역의 토지를 무상으로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땅을 함께 사용하는 전통 문화가 있다고 한다. 사람은 적고 땅은 넓다 보니 가능한 정책 같았다. 물론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건 아니고, 몽골 국적을 가진 사람에게만 해당된다고 했다.
한 사람당 평생 한 번만 받을 수 있는 조건이지만, 4인 가족이라면 각각의 이름으로 총 4곳의 땅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도시 지역은 대부분 분배가 끝났고, 요즘은 시골 지역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받을 수 있는 땅의 크기는 지역에 따라 달랐다. 도시권은 약 212평, 시골 지역은 약 1,058평 정도였다.
몽골 사람들 중에는 여전히 양, 말, 염소를 키우며 살아가는 유목민이 많다. 풀을 따라 이동해야 하다 보니, 쉽게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집을 만들게 되었고, 그게 바로 ‘게르’였다. 몽골에 가면 게르에서 사는 유목민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이유다.
이런 제도가 있어도, 집을 지을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느 나라를 가든 빈부 격차는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여덟 살, 여섯 살 아이를 키우는 한 엄마에게 게르를 선물해주기 위해 학생들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엄마가 받은 땅은 시골 지역에 있었고, 친척 집 넓은 마당 안쪽에 게르를 짓기로 했다.
서로 힘을 모아 나무를 나르고, 페인트를 칠했다. 게르를 선물 받을 아이들도 학생들과 함께 집을 만들어 나갔다. 페인트칠을 마친 뒤 하루 동안 말리고, 다음 날부터 하나하나 나무를 연결해 게르의 형태를 만들어 갔다.
게르는 단 하나의 못도 필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끼워 맞추고, 줄로 꽉 묶어서 완성된다. 몽골 사람들은 2시간이면 다 짓는다고 했지만, 어린 학생들에게는 4일이 걸렸다.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아이들과 학생들은 금세 친구가 되었다. 잠깐의 휴식이 주어지면, 그늘로 들어가 서로에게 물을 뿌리며 장난을 쳤다. 페인트칠을 하다 묻은 손이나 팔을 닦아주는 모습도 정겨웠다.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진심은 분명 통하고 있었다.
“선생님, 나스카 쭈쭈바 줘도 돼요?”
“니 거 줘.”
간식을 먹기 위해 쭈쭈바 하나를 나눠 주었더니 한 학생이 물었다. 어찌하나 보려 퉁명스럽게 답했더니, 자신의 것을 아이에게 건넨다.
“준보야, 넌 두 개.”
다른 학생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으며, 준보의 어깨는 이미 하늘에 닿은 듯했다. 서로를 배려하고 웃음 짓는 그 순간이, 더위도 피로도 모두 잊게 만들었다.
완성된 게르 안에서, 미리 준비해 온 선물을 나누며 서로를 꼭 안아주었다. 단순히 집을 지은 것이 아니라, 마음을 함께 나누었기에 더욱 뜻깊은 시간이었다. 나흘 동안 함께 땀 흘린 끝에 이뤄낸 작은 결실. 작별 인사를 나누는 순간, 서로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햇살은 뜨거웠어도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했다. 오후에 3~4시간 야외 활동을 한 학생들은 저녁마다 하루 일과를 정리하며 일지를 썼고, 금세 곯아떨어졌다. 아침이 되면 어딘가에서 에너지가 솟아나는 듯,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났다.
“선생님, 오늘 학교 빨리 가고 싶어요.”
“안 졸려?”
“어제 기르기랑 오늘 쉬는 시간에 공놀이 하기로 했어요.”
“그걸 어떻게 말했어?”
“통역 선생님이 도와줬죠.”
아이들의 의사소통 방식은 매번 신기했다. 운동장에서는 농구와 축구가 한창이고, 교실에는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수업 시간보다 쉬는 시간을 더 많이 주었지만, 쉬는 시간이 되면 ‘언제 이렇게 친해졌지?’ 싶을 정도로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운동장에서는 농구와 축구가 한창이다. 교실에는 삼삼오오 여학생들이 모여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학생들과 봉사를 시작하면서 수업 시간 보다 쉬는 시간을 더 많이 주었다. 수업 시간에는 정해진 수업을 진행했지만, 쉬는 시간이 되면 ‘언제 친해진거야’ 할정도로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교실 한켠에는 미니 사진관과 네일아트 샵이 만들어졌다. 각 조별로 미션을 수행하듯 색종이로 액자를 접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한국에서 미리 연습을 해 온 덕분에 현지 아이들을 잘 도와줄 수 있었다.
액자를 다 만들면 사진관으로 이동해 기념 사진을 찍었다. 바다가 없는 몽골을 위해 대형 바다 배경도 준비했다. 각 조는 물놀이 소품을 들고 어색하면서도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모자의 로고가 비뚤어지면 서로 잘 정돈해 주었다.
“선생님, 조별 사진 찍고 나서 얘랑도 한 장 찍어도 돼요? 제가 만든 액자에 그 사진 넣어 선물하고 싶어요.” 기특했다. 하지만 일은 점점 커졌다. 너도나도 가장 좋아하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줄을 섰다.
“줄 서지 말고, 네일하면서 기다리는 건 어때?”
네일을 해주던 학생들은 차례가 되면 짝을 데리고 와 사진을 남겼다. 그 공간에는 웃음과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나서 몽골투어, 학생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아이들에 머물러 있었다. 여행 중에도 하루하루가 행복이었다. 게르를 지으며 함께 흘린 땀, 사진을 찍으며 나눈 웃음, 조용히 울던 작별 인사까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들과 함께한 그 순간이 학생들에게는 잊지 못할 경험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