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목표: 우리 아빠, 김치계 신인상 노린다.
11월 23일 일요일. 오전 9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모처럼 늦은 출근이기에 더 자야지 하고 이불을 끌어안았지만,
이 궁금증 덩어리의 성격은 결국 참지 못했다.
결정적 순간, 방문을 열고 나갔다.
순간,
나는 얼음이 되었다.
베란다 계신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아빠, 뭐하는 거야?”
“누가 배추 다섯 포기를 줬어. 아깝잖어. 겉절이 담아보려고.”
“아빠가 김치를 담근다고?”
“왜 못해.”
그냥 말없이 바라보았다.
물론 사진도 찍었다.
심지어 줌도 당겨 찍었다.
포커스도 맞췄다. 흔들림 보정도 했다.
이건 그냥 기록이 아니라 역사적 순간의 증거자료이기 때문이다.
“아빠, 도와줘?”
“칼 다른 거 줘? 너무 작은 거 아냐?”
대꾸도 없다.
오직 배추를 자르는 칼질 소리,
그리고 고도의 집중.
(그 손목 스냅은 거의 30년 경력의 일식집 장인 느낌)
왠지 웃기면서도, 괜히 마음이 찡했다.
2020년 6월 9일.
엄마가 먼저 하늘로 여행을 떠나신 뒤,
아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혼자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 같았다.
처음엔
밥은 ‘밥인지 물인지 논란의 여지 있는 상태’였고,
된장국은 ‘신라면 스프를 반만 넣은 맛이 분명한 어떤 국물’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빠는 인터넷을 뒤적이며
냄비 크기 비교
젓갈 비율 검색
배춧잎 두께 토론방 탐독
까지 하시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작년에 고추장도 직접 담그셨다.
일찍 퇴근하고 들어가니,
아빠가 부엌에서 고추장을 병에 담고 계셨다.
“아빠, 혹시 고추장…”
“사 먹는 건 맛이 없어서 내가 담갔어. 먹어볼래?”
그때도 얼어붙었는데,
오늘은 그보다 조금 덜 얼어붙었다.
이 정도면 적응 완료 수준.
익숙해지는 걸까.
아니면 그냥… 아빠가 멋져 보이나.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고추장 장인에 이은
겉절이 장인 데뷔 현장.
아빠는 양념을 뒤적이며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파는 게 더 맛있으면 어떡하지?”
순간 웃음이 터졌다.
아빠는 말했다.
“엄마가 했던 거, 기억나는 대로 해볼게. 틀리면… 먹어보면서 맞추면 되지 뭐.”
그 말에
괜히 목이 잠깐 메었다.
김치를 담그는 아빠의 뒤통수.
그 모습이 참,
강하고,
조금은 외롭고,
그리고 정말 애틋했다.
오늘의 두 번째 어색한 장면.
아니, 앞으로 더 많을 우리의 연습 장면.
출근 때문에 더 이상 옆에 있을 수 없었다.
그래도 궁금했다.
“아빠, 다 담궜어? 사진 찍어 보내줘 봐.”
“응.”
전화기 너머로는 아주 분명한 대답이 들렸는데
카톡은 오지 않았다.
(역시 기대한 내가 잘못. 사진 전송은 고난이도 기술이다.)
퇴근길, 또 궁금해졌다.
“아빠, 맛은 어때?”
“맛있지.”
“그럼 수육, 콜?!”
집에 도착하니
아빠의 겉절이가 김치통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조금 뒤엔 수육이 도착했다.
80세 아버지의 겉절이와
소주 한 잔.
오늘의 나를 충분히 위로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엄마가 하늘에서 웃으면서 보고 있겠구나.
“거 봐, 아빠는 다 할 수 있지.”
아빠는 소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이제 겉절이 담궈 먹을까 봐?”
나는 잠시 아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 손은
평생 가족을 위해 쉬지 않고 움직였던 손,
그리고 이제는 혼자서도 삶의 무게를 견디는 법을 배워가는 손이었다.
“아빠, 어렵게 찾은 김치 맛집 아주머니 서운해하시겠네.”
농담처럼 말했지만
아빠는 조용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