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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oo Jeong Oct 07. 2016

작은 농부 생활

사진작가 아내와 요리사 남편의 뉴욕 일상


처음 쓰는 글이라 한마디


시작하자마자 나보고 작가님이라는 브런치.

원래 글 쓰는 게 좋아 네이버 블로그에 끄적끄적거렸는데,

글이라는 것이 읽히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쓰는 것인지라.

요즘 브런치가 핫하다는 말에 한번 발을 담가봅니다.


사진을 제대로 찍기 시작하며 글을 멀리했으나 

너무 많은 생각과 함께 사는 것도 억울한데

그 생각들이 버려지는 건 더 억울해서 기억이라고 남기려고 이제 조금씩이라도 하나씩이라도 글을 써보려고 한합니다.




오늘의 텃밭


지난 주말만 해도 촬영하며 '완전 한여름이네' 소리를 연거 푸할 만큼 9월 중순의 뉴욕은 여전히 뜨거웠습니다.

늘 이 시기에 방심해서 선크림을 안 발랐다가 새까매지곤 하는데 

지난 토요일이 그런 날이었지요.


그렇게 뜨거운 초가을이 막 식기도 전에

신기하게도 화분 텃밭에는 가을이 와버렸네요.

분명 온도도 높았고 햇살도 여름 햇살이었는데

이 아이들은 어떻게 알고 가을맞이를 하는 건지.


시들어버리기 전에 지난 몇 달 함께한 녀석들을 담아봤습니다.

 

우선 예쁜 고추들 키들은 작지만, 엄청난 고추들을 만들어냈다.



올해 마지막이 될 풍성한 모습의 깻잎들   
멀쩡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꽃이 맺혀버렸다.


이제 깻잎은 더이상 내 것이 아니라 벌들의 것.
그 와중에 여전히 잘자라고 있는 고추
마지막 맛있는 깻잎 수확.



일주일 전에 봤을 때만 해도 그냥 싱싱하기만 했던 깻잎들이

이제 내년에 다시 태어날 채비를 다해버렸습니다.

내 마음은 여름인데, 갑자기 가을이 다가온 느낌이기도 했고

벌들이 모여든 것을 보니 내 것을 빼앗긴 느낌까지 들어 좀 씁쓸한 기분도 듭니다.


꽃이 맺히기 시작하면 깻잎이 질겨진다고 해서 거의 마지막 시기라고 하는데

마지막까지 이렇게 풍성한 잎을 땄고 올해 농사를 마무리 합니다.


 


미국에서 깻잎 키우기


귀한 몸, 깻잎


처음부터 LA나 뉴욕 근방에서 자리 잡은 분들은 제외.

하지만 미국은 LA와 뉴욕 생활권을 제외하고도 엄청 넓은 나라입낟,.

미국 사람들이 깻잎을 안 먹다 보니 한인마트가 아니라면 깻잎을 구하기도 매우 어렵구요.

한국에 있을 때는 깻잎보다 상추를 즐겨먹었는데

이곳에서 깻잎을 구하기 힘드니 이상하게 상추보다 깻잎이 더 당기더라구요.

보스턴 근처의 도시 프로비던스에 살 때는 커다란 한인마트를 가기 위해서 차로 1시간 반을 달려야 했습니다.

깻잎만을 사러 그곳에 간 건 아니었지만, 갈 때마다 깻잎은 꼭 사는 필수품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나마도 늘 있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일단 이렇게 구하기도 어렵지만

지금은 한국 음식 없는 게 없는 뉴저지에 와서 살면서도 맛있는 깻잎을 사 먹어본 적은 없습니다.

깻잎이 흔히 팔긴 하지만, 정말 나무 잎사귀같이 생긴 깻잎들 뿐.

깻잎 이야기를 하면 모두들 미국에서 파는 깻잎이 맛이 너무 심하게 없다며 안 먹고 만다는 말까지 할 정도니까요.


구하기도 어렵고, 구해도 맛없는 미국에서의 깻잎.


그래서 이렇게 키운 깻잎은 귀한 몸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디서 구하지?


미국에 한국 씨앗을 가지고 들어오는 것은 금지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깻잎이 먹고 싶을 때 나도 검색 엔진에 어디서 깻잎을 구할 수 있는지 열심히 물어보니

이미 키우고 있는 사람이 나눔을 해준다고 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근데 알고 나니 허무할 정도로 구하기가 쉬웠습니다.

3~4월 되면 큰 한국 마트에서 깻잎 모종을 팔더라구요.

너무 간단한 거 같지만

한국과 달리 한인 사회가 흩어져있는 미국에서 그 어떤 간단한 정보도 처음에는 알아내기가 힘들기만 합니다.


그 뒤로 매년 깻잎을 사서 이렇게 키워오고 있습니다.

모종 비용은 싼 편인데

화분 사고 흙 사고, 삽화나 사고...그런 비용이 꽤나 비싸서

과장 없이 깻잎 내내 사 먹는 비용보다 사실 돈은 많이 드는 거 같습니다.

그래도 맛있는 깻잎을 먹는다는 행복 하나로 매일같이 물 주고 솎아주며 키워냅니다.



나누는 것도 기쁨


미국에 와서 가장 생각나는 건 역시 한국 음식입니다.

뉴저지, 뉴욕은 많은 것들이 갖춰져 있어 비교적 아쉬울 것 없이 먹고 있으나

그럼에도 한국처럼 다양한 음식들을 좋아하는 입맛에 맞춰 근처에서 사 먹을 수 있는 건 행복은 누릴 수 없습니다.

(어쩌다 한국 들어갔다 오면 먹은 거 자랑하기 바쁜 정도)

밑반찬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유학 와있는 동생들도 많고, 젊은 부부들도 있지만 한국 반찬 맛을 내는 사람도 잘 없지요.

키운 깻잎으로 장아찌를 만들어보니 레서피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역시 재료가 맛있어야 한국에서 먹던 맛이 나더라구요.

요리에는 관심이 없지만

이렇게 키운 깻잎과 고추로 장아찌를 만들면 

밥 잘 챙겨 먹을까 걱정되는 혼자 사는 동생에게도.

젊은 부부가 아이 키우며 열심히 살고 있는 친구에게도.

과한 감사인사를 받으며 반찬을 나눌 수 있게 됩니다.

한국 같으면 이해가 안 되지만 여기서는 반찬집도 맛이 없기 십상입니다.

맛난 김치도 사 먹기 힘들 정도라 적당히 맛있는 반찬이라면 인기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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