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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묵 Sep 08. 2023

[9화] 반년 만에 사원에서 과장으로

이력 뻥튀기가 이런 건가요? 

내 이력서
2023.03 - 2023.06 : 미디어 프로덕션 사내문화팀(피플팀) 사원
2023.06 - 2023.07 : 이커머스 인하우스 포토그래퍼 대리
2023.09 - 현재 : 성형외과 마케팅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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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이런 물경력이 있나. 


말 그대로다. 이런 물경력이 있나. 커리어패스에 그리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 이력서는 누가 봐도 이상하다. 아니 이상하기보다는 별로다. 조금 별로가 아니라 너무 별로다. 첫째로 2023년에 들어서 벌써 직장이 세 번째다. 이거야 뭐 맞지 않는 곳에서 일했다고 생각하고, 맞는 곳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치자. (그래도 흠이 되긴 하지만), 근데 3월에는 사원이었던 사람이 6월에 대리가 되고 9월에 과장이 됐단다. 가당키나 한 말인지. 아무리 봐도 이상해서 6월부터 7월까지 있었던 이커머스 경력은 삭제해야 할 것 같다. 


어쩌다가 과장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 면접에서 팀장님이 "자신이 스스로 프로젝트를 운영할 수 있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부터가 과장이라 생각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직 그럴 깜냥이 아니라 생각해 대리직이나 혹은 그 이하여도 상관없다고 이야기했고 명함 신청란에도 '대리'로 적었는데 팀장님이 '과장'으로 수정하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음... 프리랜서 4.5년 했으면 과장 달아도 되잖아요?".... 네?


까라면 까야하지 않겠나. 학생시절부터 괜히 감투욕이 있었던지라 '과장' 직함에서 오는 으스댐이 좋아 그냥 과장으로 하기로 했다. 책임... 지면 되지... 그리고 수 틀리면 나가면 되지...라고 생각한 찰나. 필요한 장비가 있냐는 말에 '설마 이것도 사주겠어?' 했던 장비들을 모두 사주셨다. 장비 값만 해도 석 달 치 월급은 나올 것 같은데... 과장이란 직함도 부담스럽고, 초기 투자 비용도 부담스럽고, 이런저런 편의를 봐주는 것도 부담스럽다. 이거... 저 못하겠어요 하고 도망치는 순간 역적이 되는 셈이 되어버렸다. 사람을 이렇게 묶어 놓을 줄이야.


새로운 곳에서는 콘텐츠 마케터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기획 쪽 역량을 조금씩 쌓고, 사진뿐만 아니라 영상 쪽까지 확대하라고 하신다. 처우는 충분히 만족할 만큼 줄 테니 일만 잘하라고 (야근도 불사 지르라고) 하시는데 이거 뭐 괜찮은 게 맞겠지?

갖고 싶었던 a7m4와 24-70gm2가 한 번에 해결되다니... 역시 병원은 돈이 많다... 심지어 맥북도 M2 프로로 준비해 주셔서 부담이 아주 팍팍!!


처음 맡은 프로젝트는 원내 인테리어 촬영. 공간 촬영이 꽤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프리랜서가 아니라 이곳을 선택했다.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지만, 결국 나는 사람들의 허영심을 잘 이용하는 작가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컬처적으로는 사람들이 독서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고, 금전적으로는 단순한 프로필 촬영 (시현하다 같은)에서부터 시작해서 본인이 취향이 담긴 아이템으로까지 확장시키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돈이 들어가는 건 역시 부동산. 그중에서도 건축물을 잘 남기고 싶은 생각까지도 들었다. 자신의 노고를 다해 만든 건축물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잘 이용해서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고, 그러려면 인테리어 포트폴리오가 필요했다.


마케터로 조금 더 발전하고 싶은 마음은 적었지만, 이곳에서 호텔 촬영 + 병원 촬영해서 1년에 4건 정도는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기회가 닿으면 뷰티 쪽도 촬영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로 이곳을 선택하게 됐다. 또한 나중에 기획 쪽으로 연결되거나 아니면 PR담당으로 빠질 수도 있을 것 같고. 물론 이는 희망사항이다.


돈을 많이 쓴 곳이라 인테리어가 예쁘다. 인테리어 쪽으로 포폴 많이 쌓을 수 있는 건 큰 장점!!



근데 건강한 허영심을 담고 싶다고 했는데... 성형외과가 건강해?


솔직하게 건강하다고는 말 못 하겠다. 일 하면서 생각보다 성형외과에 대한 선입견이 나뿐만 아니라 시술과 수술을 받으러 오는 사람도 갖고 있다 보니, 선택할 때 많이 망설이고 원장님들도 그에 따른 많은 연구와 공부를 하신다는 건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한지는 모르겠다. 보톡스 필러 정도는 자기 관리 차원에서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고로 인한 흉터 거나 오랜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수술은 너무나 건강하고 필요한 수술이라 생각하지만... 글쎄 그 이상은 잘 모르겠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무엇보다 내가 성형외과에서 일하고 싶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확실하게 아니다.


인간은 선택을 하면 자신이 고르지 않았던 선택지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그러는데, 내가 만약 성형외과가 아닌 출판사를 선택했으면 어떻게 흘러갔을까 상상해 본다. 급여적인 측면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아쉬운 급여를 받았겠지만 부담은 적었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훑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현존하는 최고의 장비들을 내가 만져보긴 어려웠을 것이고, 사진 쪽으로 포트폴리오를 쌓기는 더 어려웠을 것이다.


이곳이 내가 원하는 분야가 아니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그렇지만 선택은 했으니 이곳에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조금씩 찾아서 가져가야 한다. 그것이 돈이 될 수도 있고, 사진 촬영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장비가 될 수도 있고, 돈 많은 사람들과의 인맥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분야에 대한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무엇을 탐내는지 찾아야지... 성형외과가 건강한 허영심이 아니라고 느껴진다면, 이곳에서 내가 건강한 허영심을 찾아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팀장님과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팀장님 역시도 성형외과에 대한 편견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이거는 애써 편견을 버리기보단, 되려 강점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다.

병원에서 원장님 강의 듣고 감상문도 적으라고 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지만, 나름 재밌었다. 오랜만에 감상적인 글을 쓸 수 있어 즐거웠고. 반응이 좋으셔서 다행이다. 

출근 전 최대한 내 거를 많이 하자.


회사를 다니면 아무래도 9 - 6을 회사 업무에 써야 하니 내 것을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조금은 주체적인(?) 삶은 산다고 느끼고 싶어 회사를 출근하기 전에 루틴을 만들었다. 첫 주라서 지킨 것도 있고, 지키지 않은 것도 있는데 현재 지키려고 하는 출근 전 루틴은 아래와 같다.


06:20 : 기상

06:20 - 06:50 : 독서 또는 산책

06:50 - 07:40 : 아침 수영 또는 가벼운 러닝
07:40 - 08:00 : 세면 및 아침식사(요거트 + 그레놀라)

08:00 - 09:00 : 출근 (자토바이 라이딩)

09:00 - 09:30 : 모닝프렌즈 명상 (명상 모임)

09:30 이후 : 업무시작


아는 지인이 그랬는데, 일어나자마자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하루가 결정된다고. 그래서 타자가 원하는 일, 혹은 해야만 하는 일을 먼저 하게 되면 주체적인 느낌을 잃어서 개인의 취향이 담긴 일들을 많이 하는 게 좋다고 한다. 독서, 수영, 라이딩, 명상 출근 전 4~5개 정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세팅하고 2~3개만 지켜도 충분히 주체적이라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자토바이를 타고 한강 라이딩을 하며 출근한다 60~70분 정도 소요되는데 아주 만족스럽다. 

과장으로서의 나와 개인으로서의 나 사이의 균형


회사를 다니게 되었고, 평일 중 1/3을 회사에 써야 하는 만큼 개인이 하고자 하는 것.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밀도 있게 고민을 해봐야 한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최근에 건축사진을 조금 더 찍고 싶다는 마음에, 오랜만에 건축사진가 분 한분에게 콜드 메일을 보내보았다. 현장을 따라가고 싶다고, 그곳에서 답사하며 어떻게 일하시는지 배우고 싶다 이야기했다. 정성스레 적은 메일에, 정성스러운 회신이 왔다. 답변은 거절. 동시에 왜 일을 하고 싶은지, 건축에 대해 어떤 마음이 드는지 잘 생각해 보라고, 정확한 열망을 듣고 싶다고 하신다.


사실 왜 이런 마음이 떠올랐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자친구가 실내건축디자인을 하니, 나중에 같이 일해보는 청사진을 그리다 보니 이런 걸까. 아니면 건축사진을 찍으면서 이런저런 다양한 곳을 여행해보고 싶은 욕심일까. 단순한 호기심일까. 그리고 단순한 호기심이면 안되는 걸까 등등... 조금 더 면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코칭도 여전히 받고 있는데, 기존에 사람들의 건강한 허영심을 기록하고 싶다고 했던 것에서, 사람들이 조금 더 독서를 많이 했으면 좋겠는 마음으로 전환되고 있다. 독서하는 모습이 건강한 허영심으로 비췄으면 좋겠는 마음이랄까.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것인지, 이 사회에 필요로 하는 문제해결인지는 잘 모르겠다.


두 고민 모두 나를 향한 고민이라 즐겁게 고민하고 있는데, 한 가지 공통점은 수단으로써 사진을 활용하고자 하는 것. 엄청 잘 찍는 사진작가가 되기보단, 내가 원하는 사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그 사진을 꾸준히 찍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직장인이 되었다고 월급에 안주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나로서로 살 수 있게 균형을 잘 맞춰봐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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