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결혼할 때부터 ‘육아’와 관련해 양가 집안 도움을 최대한 받지 않기로 했다
육아는 우리의 몫이고 당연히 우리가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아기 어린이집 방학이거나 아파서 며칠 동안 등원을 못 할 때만 좀 부탁하기로
(나와 남편이 연차 쓰는 게 한계가 있으므로)
7월 마지막 주 일주일간 어린이집 방학이었던 윤우
그런데 방학 전주에 윤우가 구내염과 수족구에 걸려버렸다... 수족구에 걸리면 ‘완치소견서’를 받을 때까지 등원할 수가 없다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방학일 때 어느 정도 윤우 당번 스케줄을 짰는데... 변수가 생긴 것
윤우 수족구도 걱정이었지만, ‘도대체 당번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이 밀려왔다
결국 수족구 걸린 그 주는 내가 연차를 쓰고 나머지는 서울에 있는 언니에게 부탁
윤우 방학 기간에는 남편, 언니, 그리고 친정엄마가 올라오셔서 윤우를 교대로 돌보기로 했다
결혼하고 한 가지 내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부모님이 서울 오시면 내가 한 끼라도 제대로 차려드리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엄마 올라오시면 뭐 해 드릴까?’라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엄마는 정말 내 마음을 뚫어보듯
“아무것도 하지 마... 다 해 가니깐”이라고 하셨다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포근하던지... 뭔가 마음이 푹 놓였다고나 할까
남편이 엄마 기차 도착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갔고
엄마는 두 손 가득 음식을 해서 집으로 오셨다
밑반찬, 과일, 윤우가 좋아하는 닭죽까지...
‘난 왜 이렇게 매번 받기만 하는 딸일까?’
그 받는 것이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다음날 엄마가 윤우 돌보면 식사도 제대로 못 하실 것 같아서 ‘윤우 음식 만든다’는 핑계로 몰래 국을 끓였다
“엄마 나 있을 때 아침 드세요”
엄마는 ‘아무것도 못 한다’고 생각하는 딸이 끓인 국을 맛보시더니 “맛있다~ 국 잘 끓이네”라고 하시면서 맛있게 드셨다
(만약 내가 엄마에게 국을 안 끓여드렸더라면... 계속 엄마에게 미안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회사를 가서도 엄마 점심은 드셨는지, 윤우가 힘들게 하지는 않는지 걱정이었다
부모가 자기 자식을 봐도 힘든데... 아무리 손주가 예뻐도 아기 보는 건 힘이 드는 일이다
다행히 윤우는 엄마와 잘 놀고 낮잠도 스르륵 혼자 자고 먹기도 잘 먹었다고 했다
“엄마 윤우 잘 때 엄마도 쉬어~ 뭐 하려고 하지 마”
집에 갔더니 엄마는 싱크대 청소에 빨래도 개어놓고 계셨다
“엄마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애 보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윤우 잘 때 좀 쉬어야지”
엄마는 냉장고 정리를 해주신다면서 냉장고에 안 먹거나 상한 음식들을 버리라고 하면서 팔을 걷어붙이셨다
냉장고에 그릇들을 비우니 설거지가 수북이 쌓였다
“엄마~ 설거지는 내가 할게”
“너 하루종일 윤우랑 떨어져 있었잖아... 윤우랑 놀아줘~ 윤우도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겠어?!”
나는 윤우와 놀고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또 하셨다
다음날, 윤우는 남편 출근 소리에 깨서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다
엄마는 내가 또 뭔가를 할까 봐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며 “너 어제도 늦게 잤잖아~ 좀 더 자”라고 하셨다
마지못해 방에서 자려고 하는데 엄마가 주방에서 뭔가 정리하는 소리가 들렷다
‘딸그락딸그락’
그 소리를 들으니 괜히 눈물이 났다
자식이 뭔지... 늘 뭔가를 더해주려고 하는 엄마
오히려 더 못 해줘서 미안해하는 엄마
하지 말라고 해도 엄마는 한다
‘그게 엄마 마음이니까’
누워있는데 잠깐 옛날 생각이 오버랩되면서 스쳐 지나갔다
엄마는 우리 3남매를 키우면서 단 한 번도 크게 화내거나 소리를 질렀던 적이 없었다
난 지금 윤우 키우면서도 윤우한테 화내거나 짜증 낼 때도 있는데...
나도 ‘엄마처럼’ 되려고 노력하지만,,,
‘엄마처럼 되려면 아직 많이 멀었다’는 걸 느꼈다
“엄마 정리하는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잖아”라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면서 주방으로 나갔다
엄마와 나는 안다
그게 투정이 아닌 미안함이 묻은 소리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주고 싶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엄마는 나와 남편이 쉴 수 있는 주말을 좋아하고
우리가 아기 키우면서 직장 다니는 걸 안쓰러워하고
월요일이면 또 ‘한 주의 시작’이라며 힘을 건넨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난 또 ‘엄마’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