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엄마의 일기장을 읽다

by 아내맘

내가 워킹맘으로 일을 하면서 육아를 할 수 있는 건 거의 ‘8할의 힘’은 엄마다


엄마 역시 워킹맘이면서 우리 삼남매를 키우셨다


난 둘째 딸이었지만, ‘사랑을 못 받았다’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사랑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주저 없이 아이 출산 후 복직을 선택했다


결혼할 때는 마냥 좋아 부모님 생각을 덜 했다면...

아이를 낳고 나면서부터 부모님 생각을 하루에 한 번도 안 한 적이 없었다


특히 엄마 생각...

‘엄마는 어떻게 우리를 키우고 일하고 거기에 시댁식구까지 모셨을까’라는 생각


지난번 친정에 갔을 때 엄마가 쓴 일기장 한 권을 주셨다


“너 요즘 글 쓰는데... 혹시 도움 될까 봐”


이 일기장도 사연이 많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다락방에 있던 엄마 일기장을 몰래 훔쳐본 적이 있는데 엄마가 화내면서 그길로 바로 몇 권을 통째로 버리셨다


아마 내가 그때 그 일기장을 읽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엄마만의 기록을 수십 권을 가지고 있었을 텐데...

그거 자체가 엄마의 인생을 대변하고 있을 텐데... 너무 죄송한 일을 해버린 것이다


집으로 가지고 온 엄마의 일기장...을 읽기가 사실은 두려웠다


엄마의 고생을 너무 잘 알기에...


성질이 불같은 아빠와 40여 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면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엄마는 돈 모으는 것보다 쓰는 것을 더 좋아하는 아빠를 만나 돈 고생도 마음고생도 정말 많았다


거실에 남편과 아이가 자고 있는 조용한 밤, 마음을 먹고 엄마 일기장을 꺼냈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리고 언니가 아주 아기 때의 ‘엄마의 기록’이었다


처녀 때 생각과는 너무나 달랐던 결혼생활


시댁에서 시부모님 모시면서 시동생, 그리고 결혼한 시누이 식구들까지... 대가족을 모시고 피아노레슨을 하고 첫째 딸을 키우고...


엄마는 시댁에 있으면서 ‘항상 배가 고팠다’고 했다


당연히 그랬겠지... 시부모님 이하 시댁식구들 식사 다 차려드리고 나서 뭐라도 먹으려고 하면 반찬도 없고


어디 눈치 보여서 뭘 제대로 드셨을 수도 없었을 것 같았다


엄마가 시부모님이 외출하고 나서 사과 하나, 포도 하나를 냉장고에서 꺼내 먹었는데

‘그게 얼마나 배불렀는지 모르겠다’고 적힌 문구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처녀 때는 간식도 좋아해서 많이 먹었는데... 결혼한 친구들은 다 살이 찌는데 살이 빠진 건 엄마밖에 없다고 속상해했다


아 이렇게 힘들게... 어떻게 생활했을까? 어떻게 버텼을까?


요즘 이런 상황이면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며느리들은 그냥 도망쳤을 것 같다


변덕쟁이 할아버지와 말로 사람을 때리는 할머니... 그래도 엄마를 도와준 건 지금 우리의 고모다(엄마는 일기장 곳곳에 고모 얘기, 고모가 부럽다는 얘기도 많이 적혀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배알만 꼬이면 툭하면 엄마에게 ‘나가라’고 했고~

엄마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빌어야 했다


친정에 가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고 주말이 기다려지는 건 ‘혹시 친정에 갈 수 있을까 봐’라는 희망 때문에 엄마는 주말이면 몹시 들떠 있었다


가끔 아빠가 엄마 바람 쐬게 해주려고 친구 부부들끼리 여행을 계획하기도 했는데 엄마는 그것조차 아빠에게 고마워했다


엄마가 시댁을 나섰을 때 얼마나 홀가분한 마음이었을까 싶었다


시댁 문 앞에만 가면 뭔가 두렵다고 했다


엄마의 반복적인 일과는 이랬다


아침에 일어나 시부모님 아침상을 차리고 딸을 돌보고 거기에 고모가 학교로 출근하면 사촌언니, 오빠도 봐주고... 학생들 피아노 레슨하고 그 잠깐의 비는 시간에 저녁 준비를 하고

저녁 식사 후 다 정리하고 딸 목욕까지 씻기고 남편 기다리다 보면 일과 끝... 어떤 날은 앉아 있을 시간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학교 출근하는 고모와 엄마를 비교했다


“OO이 좀 봐라~ 애 업고 밥하고 출근하고 하잖아”


엄마는 그 말이 비수처럼 꽂혔을 것이다


엄마가 다 하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본인 딸만 그렇게 보였나 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왜 엄마를 한 번쯤 생각해주지 않았을까


‘너 고생한다’며 ‘친정에 가서 쉬라’ 또는 단돈 몇천 원이라도 쥐여주면서 ‘친정에 맛있는 거 사가라’고 하지 않았을까



엄마도 엄마 성격상 친정부모님 걱정 시켜 드리지 않으려고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엄마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내가 너에게는 다 털어놓을게’


엄마에게 일기장은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였다


만약 엄마가 일기라도 안 썼으면 정말... 위험했을 것 같다


엄마는 힘들었고 버텨야 했고 견뎌야 했고... 또 그게 미덕인지 알았다


남편이란 존재는 버거웠지만, 그래도 남편만이 자신을 보호해주는 존재인냥... 그렇게 의지하면서도 참 본인과 맞지 않는 사람....


엄마는 시집살이하면서도 레슨비를 받으면 어르신들 맛있는 걸 사드렸고 또 할머니, 할아버지가 외출하거나 여행을 갔다가 오면 그 빈 자리가 느껴진다고 했다


그렇게 심성이 착한 엄마다


내 학창시절 엄마는 학생들 피아노 가르치면서 우리를 키우고 그때는 급식도 없어서 우리 삼남매 도시락을 내리 사주시고... 할아버지가 벨을 누를 때마다 피아노 가르치다가도 뛰어가서 심부름했다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 수발을 모두 다 했다


슈퍼우먼이었다... ‘슈퍼우먼이 되어야 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지금 내 나이보다 더 어렸을 때 결혼하고 엄마가 된 엄마...


엄마가 친구와 만나 나눈 대화 중 이런 글이 있었다


“예전엔 어느 양장점이 잘하고 어떤 스타일 옷이 유행한다는 얘기였는데 지금은 아기 예방 접종을 언제 했는지 등 육아 얘기”라는 거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나진 않았다


귀한 외동딸로 자라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었고 유행하는 옷도 마음대로 입을 수 있었다


그런 엄마가 시집와서 못 먹고 눈치 보고 당장 아이 우윳값을 걱정하고 푼돈이라도 모으려고 하고 그렇게 슈퍼우먼이 되기까지...


결혼하면서 너무나 많이 바뀌어버리고... 그런 예전 생활조차 부러움이 됐을 엄마


엄마는 ‘그때 내가 잘 참았고 너희가 이렇게 잘 커줘서 좋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고생한 세월을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


엄마의 일기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혹시라도 소리가 새어 나갈까 봐 흐느끼며 울었는데


엄마는 일기를 쓰는 내내 그렇게 흐느끼며 가슴 속으로 몇백 번을 울었을 것 같다


난 엄마가 그 모진 세월을 견뎌준 게 정말 감사하다


내가 행복하게 클 수 있었던 건 100% 엄마 때문이라는 거


엄마가 ‘엄마의 길’을 제시해서 보여줘서 또 엄마의 사랑이 어떤 건지 너무 잘 알아서

나 역시 우리 아이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다는 걸... 엄마를 통해 느끼고 배우고 있다


엄마, 나도 엄마 같은 ‘엄마’가 될게요~ 고맙고 사랑해요


-엄마 딸로 태어나서 너무 행복한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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