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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Jan 12. 2022

냉장고 안에서

# 오래오래 변질되지 않기 위하여.


어머니, 왜 냉장고 안에 계세요? 
천천히 상하기 위해서란다. 너는, 오래오래 나를 먹을 거잖니? 

(함성호, '고요한 재난' 중)



자식들은


평생 부모를 뜯어먹으며 산다고, 그랬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가진 것 다 내어주고 아버진 무화되어 허공으로 사라지셨고. 팔순 노몬 아직도 살을 내어 주며 행복해하신다. 효도는 부모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기 위한 자식의 노력이라고 했던가. 자식들은 변질되지 않은 부모 사랑을 오랫동안 받기 위해서, 부모를 냉장고에 모신 걸까. 아니면 부모의 사랑 자체가 냉장보관이 필요한 것일까.



어쩌면,


부모들은 평생을 냉장고에서 자식을 지켜보았을지 모른다. 밥을 굶지는 않는지, 사람들에게 치이지는 않는지 걱정하며 자식만을 바라보았는지 모른다. 자식들은 그 시선의 줄을 따라 냉장고로 돌아올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열고 허겁지겁 마음의 허기를 채울 수 있었는지 모른다. 음, 나이가 드니 한 가지는 알겠다, 어느새 나도 같은 처지가 되었다는 것을. 내가 냉장고 안으로 떠밀린 건 분명 아닌데, 출근한 사무실이 냉장고 안처럼 싸늘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혹시 여기가 엄청나게 큰 냉장고 안이 아닐까?



우리는


자식을 위해 인생을 사는 게 아니다. 자식과 함께 사는 것뿐이다. 감히 누구를 위해 살고 있다고 말하지 말자.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자유의지로 누구를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자식을 걱정하는 것의 백분의 일 만큼이라도 부모를 걱정하고 있는지, 십 분의 일 만큼이라도 부모의 안부를 묻고 있는지, 나에게 묻는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조심조심 냉장고 문을 연다. 그 안에 엄마가 있는지, 돌아가신 아버지가 있는지, 아니면 내가 들어앉아 있는지, 아내가 누워 있는지... 마음 졸이며 살핀다.





떨리는 가슴으로 냉장고 안을 살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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