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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Dec 26. 2021

12월의 인사

# 2021년, 참 고마웠습니다.

# 1


인간의 앞모습은 공격적으로 보이지만, 뒷모습은 쓸쓸하다. 체형과 관계없이, 나이, 성별과 관계없이, 부위와 관계없이 이것은 인간이 가진 공통된 두 개의 운명이다. (박범신, '하루' 중) 


일 년의 뒷모습, 12월이다. 이제는 찢길 가슴도 한 장 밖에 남아 있지 않다. 돌아보면 대견하다. 무려 11번의 찢기는 아픔을 견디어 내었다. 어찌 사람에게만 뒷모습이 있으랴. 이맘때면 우리는 세월의 뒷모습을 본다. 너무 공격적으로 살지 않았는지, 앞서려는 욕심으로 가까운 이들을 멀리하지 않았는지... 뒤돌아본다. 그래, 그래서 12월은 뒤돌아서는 달이다. 뒤처진 이들을 따뜻하게 포옹하는 달이다. 그리고 느려도 기다려주며 함께 가는 앞모습을 꿈꿔야 하는 달이다. 그것이 해마다 12월을 맞는 우리의 운명이다.





# 2


힘들지 않고 어찌 힘이 생기며, 겨울 없이 어찌 뜨거움이 달아오르며, 캄캄한 시간 없이 무엇으로 정신의 키가 커 나올 수 있겠는가. (박노해, '사람은 무엇으로 크는가' 중) 


12월, 임종의 마음으로 뒤를 돌아본다. 


올 한 해는 참 쉽지 않은 세월이었다. 속상한 일 많았고, 일보다 사람 때문에 가슴 아파했고, 또 그만큼 내 마음도 많이 성숙했다. 배신감에 아직 배울 것이 남았음에도 퇴사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대로 있다가는 죽을 것 같아, 살기 위해 바깥을 떠돌았고 무엇을 놓치기도 했다. 갑자기 속도가 빨라진 세월이 당황스러웠고, 떠나간 버스 대신 1년 반이면 도착할 버스를 기다리지 않겠다는 결정을 했다. 그냥 유유자적 풍경 속을 걷자며 놀라는 정류장 곁을 떠났다. 그렇게 남도까지 새로 수입한 자동차로 걸어서 두 시간 반. 아, 이리 살면 되는 것을. 은둔한 선비처럼, 자발적 유배를 즐겨도 되는 것을. 모질지도 못하면서 7년 넘게 모질게 사느라 욕봤다. 밖을 떠돌다 안을 돌보지 못했고, 남의 허물 들추어내느라 내 허물을 바로잡지 못했다. 새해부터는 마음을 키우며 살자고 작심한다. 새해는 또 빛나는 순간으로 시작할 것이다. 캄캄한 시간을 보낸 사춘기처럼 정신의 키가 더 자랄 것이다. 마음의 열매도 더 단단하게 여물 것이다. 


그런 믿음이 자꾸 든다, 새해에는.





# 3


끄트머리 : 맨 끝이 되는 부분, 일의 실마리 【끝+-으머리】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2021년의 끄트머리, 즉 끝의 머리에 해당하는 날이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종무식을 마쳤다고 퇴근하는 게 아니듯, 오늘로써 삶의 여정이 끝난 건 아닙니다. 벽시계를 보면 '12'라는 숫자가 밑에 있지 않고 꼭대기에 있는 이유도 그러합니다. 끝이 곧 시작이고, 꼬리가 곧 머리인 것입니다. '끝'에 서야 살아온 날들을 빠짐없이 돌아볼 수 있고, '처음'에 서야 살아갈 날들을 모두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 오늘은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맙시다. 뒤를 향하여 지긋이 눈감고 바라보기로 합시다. 


1월은 영어로 'January'라고 합니다. 문(door)을 의미하는 라틴어 'Janua'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얼굴이 두 개인 야누스(Janus)는 미래와 과거를 모두 볼 수 있는 '문의 신'이었다고 하지요. 그러니 우리도, 새해라고 앞만 보고 살면 안 되는 겁니다. 가끔은 잘 살고 있는지 뒤도 돌아보고, 뒤처진 이는 없는지 살펴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약소하지만... 새해를 축복하는 의미로 '해'를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오래전에 찍은 묵은해(2014. 12. 13. 07:36분에 떴던)지만 괜찮으시다면 나누어 드리고 싶습니다. 정동진 겨울 바다를 뜨겁게 솟구쳐 올랐던 녀석이라, 가슴 안주머니에 넣고 다니시면 봄까지 따뜻할 겁니다. 좀 오래된 새해라도 좋다 하시는 분께만 드리겠습니다. 한 해 동안, 먼길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읽어주셔서, 참 고마웠습니다. 


좀 쉬었다가 새해에 뵙겠습니다.




새해 받으세요. 정동진의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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