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만히 앉아 있는 일.
속도의 시대에, 느리게 가는 것보다 더 활기찬 일은 없으리라. 산만함의 시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보다 더 호화로운 기분이 드는 일도 없으리라.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시대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은 없으리라. (피코 아이어, '여행하지 않을 자유' 중)
사람들로부터,
아무리 힘내라는 말을 들어도 힘이 솟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말이 더 힘이 나게 한다.
"힘내지 않아도 돼. 그냥 가만히 있으렴."
그렇다. 억지로 나지 않는 힘을 내려고 힘쓸 필요는 없다. 까짓것 되는 데로 살면 된다. 내가 갈 수 있는 데까지만 가는 거다. 다른 사람이 먼저 가면 가는 데로, 나는 내 힘닿는 데까지 천천히 가면 되는 거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일이 많은 것과 감당할 일이 아예 없는 것은 똑같다. 사람을 힘들게 한다는 점에서. 일이 많아 바쁜 사람은 일이 없어도 바쁘다. 바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혹시 바쁘지 않으면 죄를 짓는 듯한 불안감으로 살고 있지 않은지? 왜 바쁜 것인지, 정말로 바쁜 것인지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잘 산다는 것이 꼭 바쁘게 사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잘 사는 것은 '느린 바쁨'이 아닐까, 생각한다. 낙엽 다 떨궈낸 겨울나무가 봄을 준비하는 일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씩 조금씩 제 일정에 따라 차분하게 봄을 서두르는 것처럼.
너무 많은,
알아야 할 지식들과 외워야 할 이름들, 이런 잉여의 시대에 건망증 하나쯤은 갖추고 있어야 할 소양일 것이다. 넘치는 관계 속에서 살다 보면 야속하고, 얄밉고, 마주하기도 싫은 사람이 흙물처럼 떠 오를 때가 있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과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가라앉히려 애를 먹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속상해하거나 분노하지 말자. 염증과 화는 마음을 들끓게 하고 가라앉은 바닥을 휘저어 올릴 뿐이다. 우리의 마음은 우물과 같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혼탁했던 물이 차차 맑아진다. 휘젓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맑아진 마음으로 또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다. 결국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