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입을 만한 옷이 없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옷은 사람이래요. 그래서 추운 날 누군가를 안으면, 몸은 물론이고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것이 사람이래요. 결국 우리들은 누군가의 옷인지도 몰라요. (박광수,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중)
냉혈동물인
도마뱀은 병에 걸리면 따뜻한 돌을 찾아가 몸을 데우는데, 그러면 체온이 올라가 병을 이겨낼 수 있다고 한다. 반면 몸을 데울 따뜻한 장소를 찾지 못한 도마뱀은 죽을 확률이 높다 한다. '진화심리학'이란 책에서 읽었다. 마찬가지로 추운 겨울 동사(凍死)하는 사람도 도마뱀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냉혈동물이라 비난하는 사람일수록 그럴 확률이 높을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 불리는 어떤 사람이 외로운 겨울날 얼어 죽었다. 따뜻한 사람의 온기를 찾아 헤매다 마침내 군중 속에서 凍死한 사람. 아무도 자기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마음을 동결시켜 주검이 된 사람... 살면서 이런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어느새
선선해졌다. 가을이다. 내 알레르기 비염은 계절이 바뀌었음을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옷이 바로 사람이라니. 생각해 보니 공감이 된다. 아직 이른 가을이라 외투를 벗으면 춥고, 입으면 덥다. 따뜻해지려 입어 놓고, 덥다며 벗어던진다. 그러다 쌀쌀하고 쓸쓸해지면, 주섬주섬 또 옷을 집어 든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그래도 나는 새 옷보다 헌 옷이 좋다. 오랜 세월 입고 벗기를 반복하며, 옷이 아니라 사람으로 진화한 나의 낡은 외투를 사랑한다. 바깥 날씨가 차가울수록 그 사람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입을 만한 옷이 없다.
옷에 관한 모든 여자들의 생각은 이 말로 대변될 것이다. 당장 입을 일도 없으면서 '세일'이나 '1+1'이란 표시가 있으면 무조건 사고 보는 아내. 옷이며 신발이며 양말이며 품목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물론 고가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이 사가면 어떡하냐고 되묻는다. 여자들의 옷에 대하여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눈으로 입는 옷이 있고, 입으로 입는 옷이 있고, 몸으로 입는 옷이 있는 게 아닐까. 아, 마음으로 입는 옷도 있겠다. 여자의 옷은 남자의 옷과 달리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몸을 방어하는 용도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적극적으로 끌어오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 같기도 하다. 외출 준비를 끝내고 현관 앞에서 기다리는 나에게 아내는 언제나 말한다.
"나는 정말 입을 만한 옷이 없어."
그 말에 나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그 말에는 아내의 진심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옷이 사람이라 했던가? 저 말은 따뜻한 옷 한 벌 사 달라는 말이 아니다. 나보고 따뜻한 '사람 옷'이 되어달라는 요구인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돌아본다. '따뜻한 사람'이기를 노력해 왔지만 충분히 따뜻했는지는 그다지 자신이 없다. 따뜻함이란 상대적인 개념이라서 다른 사람보다 따뜻한 정도였지, 뜨거운 가슴일 정도로 우리의 삶을 데우며 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떻게 해야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따뜻하다는 것은 따뜻한 무언가를 많이 축적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나는 추운 겨울날 모닥불이 따뜻한 이유는 불 때문이 아니라, 따뜻한 장작 때문이라 생각한다. 장작 속에는 여름내 쟁여놓은 햇볕이 들어 있다. 그래서 따뜻한 장작인 것이다. 사람도 햇볕을 많이 품고 있어야 따뜻한 사람일 것이다. 햇볕 같은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으며, 노력으로 성장한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 성장이 아니라면? 나처럼 어쩔 수 없이 가을 햇볕 아래 한참을 서 있어야 하겠지. 우리 이번 가을에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 서로에게 따뜻한 옷이 되어주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