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에 대한 감사의 기록
7년 넘는 기간 동안 감사업무를 했던 경험을 조언으로 정리한다. 이 업무를 하게 될, 나중의 누군가에게, 나는 이러했으니, 그대는 저러하시오, 라는 조언을 선문답처럼 해 주고 싶었다. 직접 얼굴을 보고, 알려주면 좋겠지만, 지금은 비대면 시대니까.
그동안 구전으로만 전해 내려온 감사관실의 전설 같은 명언들, 발령받던 날부터 투입된 감사 현장에서 가졌던 감사의 정체에 대한 의문, 나름대로 감사에 대한 깊은 고민의 결과, 그것을 쓸모 있는 발자국으로 남겨 두어야겠다는 욕심, 이런 연유로, 가볍게 읽되 무겁게 생각해야 하는 “감사요결” 을 남긴다. 이제 막 감사관실 문턱을 넘어선 나중의 그대에게 일말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 주의 - 감사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재미도 없고, 독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굳이 읽지 않아도 됩니다.
나무를 가위질하여 자르는 이유는 나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겨울의 추위가 심할수록 봄의 나뭇잎은 더욱 푸르다. (프랭클린)
감사업무는 가지치기와 같다. 그대로 두면 그 기관의 양분만 빨아먹고 열매도 맺지 않는 방향으로 자라는 가지를 솎아 내는 것이다. 나무가 건강하게 잘 자라도록 몹쓸 가지를 가려내어 과감히 잘라내는 일은 중요하다. 쓸모없는 가지를 선별해 내는 농부의 안목을 가져야 하고, 과감히 가위를 대는 결단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가지치기의 이유는 나무를 사랑하기 때문이란 사실이다. 감사관은 나무의 성장을 도모하지 않고 깊은 고민도 없이 함부로 가위를 휘두르지 않도록 특히 조심해야 한다. 감사 대상 기관의 발전을 위해 애정을 갖고 있어야 한다. <나무 = 피감기관, 가지 = 직원, 조직구성원>
감사는 처삼촌 벌초하듯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른걸레 물 짜듯이 하는 것이다. (이운규 감사관)
처삼촌 벌초를 어떻게 할까? 설렁설렁 하는 둥 마는 둥 한다. 왜 감사를 처삼촌 벌초하듯이 하는 거라고 했을까? 이 말은 감사 도입부의 자세를 말한다. 초반에는 가능한 많은 분야에 대하여 자료 요구를 하고 착안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 입질이 올 때까지. 피감 기관에서 무엇을 보고자 함인지 예측하지 못하도록 설렁설렁 말이다. 최대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고 농담도 주고받으며 친절한 자세로 유연하게 사고하라는 말이다. 그러다 감사 중반 이후 그동안 펼쳤던 사항 중에서 착안점을 찾았을 때부터 ‘마른걸레 물 짜듯이’ 감사를 해야 한다. 마른걸레에서 물을 짜 내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안간힘을 다해 발견한 착안사항을 지적사항으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감사 경험을 어느 정도 쌓은 후에야 ‘처 삼촌 벌초’와 ‘마른걸레 물 짜는’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짜이는 마른걸레도 고통스럽겠지만, 짜는 사람은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감사는 자동차에서 브레이크 기능과 액셀 레이트 기능을 하는 것이다. (김시관 감사관)
달리기만 하는 자동차는 자동차가 아니다. “이십 년째 직진 중”이 란 초보운전 표지를 달고 있지 않은 이상. 고장 난 채로 달리기만 하는 자동차를 멈추어 주는 것이 감사다. 잘못된 방향으로 질주만 하고 있는 자동차의 속력을 줄여주고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도록 하는 역할 말이다. 마찬가지로 달리지 못하거나 달리지 않고 복지부동하고 있는 자동차에 대하여는 감사가 액셀러레이터 기능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달리고는 있지만 다른 자동차들에 비해 현저히 속도가 떨어지는 자동차에 대하여는 가속하여 비슷한 수준을 맞추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한 가지 명심할 것은 감사가 자동차의 주행 전부를 도와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차로를 벗어나거나 먼 길을 돌아가더라도 그것은 핸들을 쥐고 있는 운전자의 몫이다. 그에게서 핸들까지 뺏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잊지 말자. <자동차 = 감사 대상 기관>
감사는 검사처럼, 처분은 변호사처럼 하라. (안행부 모 감사관)
감사가 착안한 대로 적발하고, 적발한 대로 처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감사원에서는 확인 후 9단계 이상 검토를 거쳐 처분에 이른다. 우리는 남의 잘못은 검사의 입장에서, 자신의 실수는 변호사의 입장에서 판단하려 한다. 감사 중이나 감사가 끝나고 이미 시정 노력을 하고 있거나 충분히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 등에는 변호사의 입장에서 처분요구서를 작성하기를 조언한다. 그리고 어떤 국-과장이라도 감사자의 시야보다 높고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검사의 입장에 매몰되어 있는 감사자가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을 그분들이 변호사와 장-차관의 입장에서 판단해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동격서(聲東擊西)가 능사는 아니다, 때로는 성동격동(聲東擊東)이 효과적 일 때도 있다.
감사 전략으로 흔히 ‘성동격서’를 꼽는다. 동쪽을 치는 척하면서 서쪽을 친다. 자료 요구를 할 때 A를 보는 것처럼 하면서 B를 포함시켜 요구하는 것이 성동격서의 방법이다. 물론 이 방법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성동격동(聲東擊東)’하기를 조언한다. 감사는 사실(fact)에 입각하는 것이고 이미 일어난 사실은 숨길 수는 있어도 없앨 수는 없다. 나는 A 사실을 보려고 하니 A 사실 자료를 제출해라. 이렇게 하여도 사실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데이터의 부자연스러움 속에 그런 사실은 표시가 나고 그러다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동격동의 방법은 자료를 요구하는 것만으로 잘못을 인정받고 확인서를 받는 것까지 한 번에 해결되는 경우도 있어 효율적이다.
감사할 줄 모르는 자를 벌하는 법은 없다. 감사할 줄 모르는 삶 자체가 벌이기 때문이다. (라이피 곱스)
‘검사 동일체의 원칙’은 감사관에도 적용된다. 감사도 경력이 많건 적건 독립된 감사관의 지위로서 지적을 하고 처분을 요구한다. 감사를 못하더라도 처벌받는 일은 없다. 내 능력껏 정성을 다하여 노력했으나 지적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고 흉내만 내려하거나, 숙소에서 밤을 새워 고민하지 않았다면 벌을 받아 마땅하다. 감사과에 있으면서 감사할 줄 모르거나 감사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근무하는 자체가 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예산과는 예산을 짜고 인사과는 인사를 하며 감사과는 감사를 하는 곳이다. 감사가 존재 이유인 것이다.
감사는 주식투자처럼 ‘손절매’가 중요하다. 빨리 버리고 다른 고구마 줄기를 찾는 것이 현명하다.
하한가를 치는 주식은 빨리 처분할수록 손실을 줄인다. 감사에서 하한가, 란 공들여 서식 그려서 자료를 요구하였지만 특별한 착안점을 찾을 수 없는 경우이다. 그때 시간과 노력을 더 투자할 건지, 포기하고 다른 분야를 펼칠 건지를 신속히 판단해야 한다. 바로 손절매이다. 감사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손절매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썩은 줄기를 따라가지 말고 그럴 땐 다른 고구마 줄기를 파내려 가는 것이 현명하다. 원줄기보다 곁줄기에서 커다란 고구마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감사는 퍼즐 맞추기 게임이다. 그리고 고스톱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000 피스 2,000 피스짜리 복잡한 퍼즐이 아니라 많아야 20개 정도의 조각을 주어진 시간 안에 맞추는 게임이다. 어느 쪽에서 시작하든 감사 종료 시점이 되면 서서히 그림의 윤곽이 드러난다. 감사를 받는 사람도 감사를 하는 동료 감사관도 모른다. 내가 어떤 그림 조각을 어떻게 맞추어 가고 있는지. 감사 마지막 날 확인서 한 장으로 모든 퍼즐이 완성될 때 그 형언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끼라는 말이다. 그리고 감사는 감사 명령서에 의해 감사장에서 감사 기간 내에 끝나야 하는 경기다. 즉 시간을 정해 놓고 치는 고스톱 같은 거다. 주어진 시간 안에 돈을 따든 잃든 모든 걸 마쳐야 한다. 게임시간이 끝났는데 혼자 화투를 들고 다니거나, 따지 못한 돈을 내놓으라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소용없는 짓이다. 그리고 고스톱은 초반에 아무리 끗발이 좋아도 돈을 따는 건 아니다. 다 마치고 일어설 때 비로소 땄는지 잃었는지 알 수 있는 게임이다. 감사는 그런 것이다.
‘문답’이란 한 마디로 상대의 입을 통해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감사나 조사를 하다 보면 다툼이 있지만 증거가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때는 문답조사 외에는 수단이 없다. 수사기관의 ‘신문’과 같은 조사 방법이다. 그리고 징계를 요구할 때는 문답서가 반드시 첨부되어야 한다. 문답이란 묻고 답하면서 상대방의 입을 통해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고도의 심리전이다. 상대에 대한 철저한 사전조사를 통해 심리적 약점이 무엇이고 어떤 순서로 공략할 것인지 치밀하게 준비하여야 한다. 그리고 침묵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더라도 “그 일은 내가 하지 않았다."라는 진술은 받아내야 한다. 거기서부터 “네가 아니면 누가 했느냐, 모든 정황이 네가 한 것으로 되어 있다."라는 식으로 전개해 나가야 한다. 문답은 체력전이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수반한다. 최소 두 시간에서 많게는 2박 3일까지 지루한 싸움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휴식시간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감사자는 그 휴식시간(심리적 방어막이 느슨해진 시간)을 쉬려 하지 말고 최대한 활용해야만 한다. 문답조사를 통해 상대의 입에서 사실이 나온다면 감사자의 입에선 단내가 나야 하는 것이다.
감사에는 “느낄 감(感), 덜어줄 감(減), 성찰할 감(鑑), 멀리 볼 감(瞰)”의 네 가지 덕목이 있다. 감사는 감4다.
감사를 하면서부터 생각하던 감사의 ‘감’이란 글자. 보고 살피는 뜻의 감사(監査). 단순히 사실을 찾고 살피는 것이 감사라는 데 동의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감사는 네 가지이다. ‘느낄 감(感), 덜어줄 감(減), 성찰할 감(鑑), 멀리 볼 감(瞰).’ 끝난 뒤에 그 기관에서 고마움을 느끼는 감사, 그 기관의 묵은 고충을 덜어주는 감사, 많은 고민과 생각으로 깊이 있고 무게 있는 감사, 지적보다는 그 기관의 장래를 생각하는 발전적인 감사. 감사하는 사람은 감성과 배려와 성찰 그리고 멀리 보는 시야를 갖도록 항상 노력해야 한다.
감사의 비결도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에 있다.
중국 송나라 정치가이자 문장가인 구양수가 말한 작문의 비결. 감사를 잘하는 비결도 마찬가지이다.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는 것 외에 왕도는 없다. 다문(多聞)은 선배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감사장에서는 감사를 받는 사람들의 말을 충분히 들으라는 말. 감사관이 피감자보다 말을 많이 하는 경우는 없다. 다독(多讀)이란 감사보고서를 읽고 또 읽으라는 말이다. 감사과에 처음 오면 내근을 시키는 이유도 먼저 흐름을 파악하는 시간을 주기 위함이다. 감사 보고서는 자체 감사뿐 아니라 감사원, 타 부처 공개 자료도 섭렵하여 폭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 특히 감사원 홈페이지에 메일링 신청하면 이메일로 감사 결과를 보내주니 활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다상량(多商量)이란 넓고 깊게 생각하고 고민하란 말이다. 나라면 어떻게 지적을 하고 어떤 처분을 요구했을까? 왜 이렇게 처분한 걸까? 내근하는 기간 동안 사무실 잡무 처리에 매달리지 말고 앞으로 잘 주어지지 않을 소중한 시간임을 깨닫고 스스로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이런 단련의 과정을 마쳐야 실전에 투입되었을 때 감사하는 시늉이라도 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가령 반반한 판자를 굽은 판자 위에다 두면, 아래에 있는 굽은 판자도 반 반하게 된다. 사람도 이와 같아서 바른 사람을 위에다 앉히면 백성이건 부하건 스스로 바르게 되어 심복하게 될 것이다. (논어)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며 공감했던 말. 공공기관을 감사하다 보면 반반한 판자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원장이나 회장, 사무총장이 반듯하지 않으면 그 기관 전체가 비뚤어져 있는 모습을 곧잘 본다. 너무 많이 틀어져 무너지기 직전, 감사로써 긴급 처방을 내리지만 이미 굽은 판자는 퇴직하고 없고... 새로 온 판자는 영문도 모르고 있고. 그래서 감사 실시 주기를 기관장의 임기와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퇴임 전에 정기 감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조정하여 비뚤어지게 한 책임을 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먹고 튀는 판자가 없도록 말이다.
"thank"의 어원이 “think”라고 합니다. 깊이 생각할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이 깊을수록 감사도 깊어지는 것입니다. (김석년, ‘지혜자의 노래’ 중)
깨달음이 깊을수록 감사도 깊어진다.... 이 말을 마음에 새기고 감사할 것을 조언한다. 깨달음은 깊이 생각할 때 얻어지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thank’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감사는 아니지만, 바꿔 생각해도 무방하다.
한 번이라도 내가 숨 쉬고 걷고 달리고 말할 수 있음에 감사해 본 적이 있는가? 오늘 살아 있음을 감사해 보았는가? 살아 있음은 기적이다. 그리고 기적은 감사의 충분조건이다. (전광, ‘평생감사’ 중)
감사(感謝)의 끝은 무엇일까?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감사,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아닐까. 감사(感謝)나 감사(監査)나 똑같다. 그러면 감사(監査)의 끝은 어디일까? 연 240 근무일 중 164일을 감사하면서도 단 하루도 내 삶에 대하여 감사하지 못했다. 비극이다. 감사의 끝, 감사 부서를 떠나야 할 때를 알려주는 징조는 이런 것들이다. 아내의 돈 씀씀이와 아이의 거짓말에 대하여 감사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부부 싸움 중에 문답조사의 기법을 동원하고 있거나, 사무실 동료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대해 꼬리를 물고 질문하고 있을 때. 보험사나 카드사 등에서 판촉성 전화가 오면 냉철하고 조리 있게 팩트를 따져 묻고 있을 때. 이런 징조들이 나타나면... 이제 당신은 감사업무를 떠나야 할 시기이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