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씀 May 13. 2022

처음으로 돌아간 옷걸이

# 처음의 마음


세탁소에 갓 들어온 옷걸이에게, 헌 옷걸이가 한마디 하였다.

"너는 옷걸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길 바란다."
"왜 옷걸이라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시는지요?"
"잠깐씩 입혀지는 옷이 자기의 신분인 양 교만해지는 옷걸이들을 그동안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정채봉,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중)



그렇구나.


지금 내가 걸치고 있는 옷은 나의 것이 아니었구나. 짙은 양복 차림으로 으스댈 것도, 때 묻은 작업복을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철 지나 입을 수도 없는 옷가지 마냥 서랍에 쌓여 있는 명함들이 나의 것이 아니듯, 명함 속 문구가 언제까지 나를 언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어느 때 어떤 옷을 입게 되더라도 옷걸이의 본분을 잃지 말자. 기저귀 하나로 시작해서 수의 한 벌로 끝나는 인생에서 기저귀의 마음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의 첫 마음이고 옷걸이의 마음이라 생각한다. 본분을 잃지 말라는 건 처음의 마음을 품고 살라는 말이다.


처음은 첫 마음이다.


사실 우리가 처음을 대하는 마음은 한결같기 어렵다. 처음이 처음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내 나중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처음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소주병에 적힌 문구대로 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처음처럼' 사는 게 아니라, 처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처음처럼, 이란 말은 처음과 같이, 즉 처음과 비슷하지만 처음은 아니란 의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살겠다는 굳은 결의가 바로 첫 마음, 처음의 마음이다. 이 '처음의 마음'을 줄여서 ‘처음’이라 하는 것이다.


처음은 원래 힘든 것이다.


첫 수업, 첫 출근, 첫사랑... 누구에게나 처음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이 어제 본 오늘처럼 보여도 사실은 어제의 오늘이 아니듯, 우리가 겪는 일은 모두 처음의 일이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두 번은 없다, 두 번째 인척 하는 처음만 있을 뿐이다. 이십 대도 처음이고 삼십 대와 사십 대도 처음이고, 오십 대와 육십 대도 처음인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처음은 힘든 거라고 누구나 인정을 해주니까. 힘들게 페달을 밟을수록 자전거가 멀리 나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 지금 우리에게 마지막 처음으로 살겠다는 결의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평생 자신의 본분을 다하려 애쓰는 옷걸이가 있었다. 그는 자기가 사람인 줄 아는 옷들에게서 그 지혜를 배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운할 때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