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운함과 미안함
그러면 당신은 나에게 번번이 지십니다. 그것은 내가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에게 지기를 기뻐하는 까닭입니다. 번번이 이긴 나는 당신에게 우승의 상을 달라고 조르겠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빙긋이 웃으며 나의 뺨에 입 맞추겠습니다. (한용운, '꽃싸움' 중)
멋지다.
비록 상대 없이 혼자 하는 꽃 싸움이지만, 만해 선생님은 부부싸움도 이런 거라고 하실 것 같다. 흔히 부부는 돌아누우면 남이라 그런다. 그렇다면 한번 더 돌아누우면 다시 부부가 되겠지.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 부부싸움을 하면서도, 어여쁜 패자를 위해 한번 더 돌아눕는 것,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같이 살다 보면 서운한 일 참 많다.
이해인 수녀는 사랑하는 이가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서운하게 할 때는, 말을 접어 두고 하늘의 별을 보라고 했다. 별들도 가끔은 서로 어긋나므로, 서운하다고 즉시 화를 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했다. 철없던 신혼에 우리는 하루에 일곱 번 다투고 일곱 번 화해한 적도 있다. 소꿉장난 같던 그 시절에 깨는 다 어떻게 하고 왜 그렇게 싸우기만 했을까. 남자가 매너 없게 차도 쪽으로 걷지 않고 여자를 걷게 한다고 다투고. 화내는 이유도 모른다고 싸우고. 시장길 리어카 위에서 만 원짜리 허리띠를 샀다고 다투고. 쌀 살 돈도 없는데 글 쓴다며 전동 워드프로세서 샀다고 싸우고. 그럴 때마다 나는 아내에게서 빠져나와 에스키모처럼 걸었다. 에스키모는 슬픔이 가라앉고 걱정과 분노가 풀릴 때까지 하염없이 걷다가, 마음의 평안이 찾아오면 그때 돌아선다고 한다. 돌아선 지점에 막대기를 꽂아두고서.
만약 이해받거나 이해하지 못해 서운한 감정이 복받친다면.
당장 거기에서 나오기를 조언한다. 그냥 휘이~ 무작정 걷다 보면 알게 된다. 서운함이란 내 뜻과 다른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너무 많은 내 뜻을 기대한 나 때문에 생긴 감정이란 것을. 그렇게 넘쳐흐른 욕심들을 거리에 뿌리고 오면, 서운함은 이내 미안함이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