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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Apr 27. 2022

할 말이 많은 침묵

# 할 말이 너무 많은 것


나는 부재(不在)의 부피, 나는 상실의 밀도, 나는 어떤 불빛이 가물대며 버티다 훅 꺼지는 순간 발하는 힘이다. (김애란, '침묵의 미래' 중)



부재(不在)의 


부피가 너무 크면, 상실의 밀도가 너무 높으면, 극적으로 재회하더라도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슬픔이 거대하면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머금은 말이 많으면 말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이렇듯 침묵은 말의 부재가 아니라 말의 너무 많은 존재에 태생한다 할 것이다.



누구와


오래도록 같이 있다 보면 말이 없어진다. 긴 세월을 대면하다 보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소통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묵의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 침묵의 이유를 잊어버리고 오해가 쌓이기 시작한다. 침묵을 자기의 말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나아가 자기를 무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소통의 비극은 말에 대한 오해가 아니라 침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다. 



사람들 


대부분은 침묵의 이유를 '할 말이 없어서'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백 마디의 말보다 찰나의 침묵 속에, 천 마디 이상의 말이 들어 있음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침묵은 거의 빈 채로 끝나는 고수들의 바둑판이다. 나와 상대의 수 천 가지 이상의 수를 계산한 끝에 던지는, 침묵의 돌인 것이다. 대화 중에 상대가 나에게 침묵을 준다면, 진실되게 소통의 끝에 집중하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침묵의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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