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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Nov 09. 2022

종이에 손을 베이다

# 사람을 다치게 하는 종이를 경계하다.


종이가 나의 손을 살짝 스쳐간 것뿐인데 피가 나다니, 쓰라리다니. 나는 이제 가벼운 종이도 조심조심 무겁게 다루어야지 다짐해본다. 세상에 그 무엇도 실상 가벼운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내가 생각 없이 내뱉은 가벼운 말들이 남에게 피 흘리게 한 일은 없었는지, 반성하고 또 반성하면서... (이해인, '종이에 손을 베고' 중)



한 번쯤,


종이에 손을 베인 적이 있을 것이다. 정말 살짝 스쳤을 뿐인데, 손에서 피가 나고 쓰라리다. 하찮은 종이 따위가 무슨 칼날이야, 움찔 놀라지만 때는 늦었다. 종이가 그냥 종이가 아니다. 조심스레 들춰 보니 칼날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아 그랬구나. 베인 손으로 종이를 넘기며 반성한다. 나는 혹여 상처 주는 말을 종이에 적지 않았는지. 생각 없이 끄적거린 가벼운 글들이 남을 피 흘리게 한 적은 없었는지.



다시금,


깨닫는다. 종이는 비록 가벼울지 몰라도, 문서는 절대 가볍지 않다는 것을. 한 장의 종이에 베이는 이딴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문서 한 장으로 사람이 죽기도 한다는 것을. 빈 종이에 시간과 생각과 결심이 담기면, 세상 어떤 무기보다 강력한 파괴력이 생긴다. 그러므로 종이에는 진실만을 담아야 한다. 거짓으로 만든 문서는 침묵하는 휴지 한 장보다 못하다. 사람을 다치게 하는 종이를 경계하며, 여백만이 기록된 A4용지를 꺼내 든다.



이제는,


옛날처럼 종이를 가까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러면 칼날을 품은 종이에 베이는 사람도 적겠구나,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요즘은 글과 소리와 몸짓에 더해 다들 동영상을 만들어 칼춤을 추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런 화면을 쳐다보다가 상처 입어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진실을 확인하지 않은 영상들이 품고 있는 칼날은 차라리 화살에 가깝다. 상처를 주는 위험한 칼날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종이를 취급하던 때보다 더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각별히 조심하기를 빈다.





산처럼 위태하게 쌓인 문서철, 아무도 다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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