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간 아들이 있었다

# 입대부터 제대까지 부모의 목격담.

by 마음씀

102 보충대


아들을 유학 보냈던 한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하도 속을 썩여서 눈에 안 보이면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한밤중에 일어나 큰소리로 몇 번이나 엉엉 울었지 뭐니."

썰렁한 아들 방을 볼 때마다 눈물이 핑 돌아서 방문을 꼭꼭 닫아놓고 가능하면 아들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상춘, '다시 태어나는 중년' 중)


우리 부부가 그랬다.


몹시 추웠던 겨울, 지금은 없어진 102 보충대에 아들을 들여보내고 돌아와 우리가 그랬다. 덩치만 컸지 겁 많고 순해 빠진 녀석을... 오늘 한파주의보 내린 강원도 춘천 땅에 두고 돌아왔다. 102 보충대에는 천여 명이 넘는 까까머리 순둥이들이 집결해 있었지만, 우리 생각에는 아들 녀석이 제일 순둥이처럼 보였다.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한 채 제 혼자 놀라 토끼처럼 연병장으로 뛰어가는 모습에 그만 눈물이 터졌다. 추위, 결핍, 사람, 그리움 그리고 인내... 오직 거기서만 할 수 있는 값진 경험을 마음껏 하고 오라고, 어젯밤 적어 준 수첩을 아들은 손에 꼭 쥐고 들어갔다. 속이 후련하다고 말하며 아내는 서울 춘천고속도로에 눈물을 몰래 버리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들의 방으로 곧장 들어갈 것이고, 어질러진 아들의 빈 방에서 펑펑 울게 될 것을. 아, 곁에 있을 때 이리 그리워했으면 좋았을 것을.





신교대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안도현,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중)


신병교육대 교육훈련 수료식에,


참석하러 가는 길. 강원도에 내린 폭설을 염려하여 스노 체인까지 챙겨 들고 생전 처음 가 본 양구. 신교대 5주 훈련을 마친 아들은 눈에 독기가 비치고 바짝 군기가 들어 있었다. 눈 오는 날 만나기로 약속하지 않아 다행히 눈은 내리지 않았다. 그렇게 먹성 좋던 녀석이 바리바리 싸 간 음식을 먹어내지 못한다고 아내는 또 마음 아파한다. 툭 건들기만 해도 목청껏 관등성명을 대는 이등병 아들. 그래 그렇게 사는 거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주어진 역할대로 "~답게" 사는 거다. 이등병답게 살고 있는 아들을 만난 후 나는 마음을 놓았지만 아내는 가슴이 먹먹한 모양이다. 이제 그만, 알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놓아주어야 할 텐데 말이다. 엄마답지 않다고 아내에게 핀잔을 주었지만 아내의 심정을 안다. 보고 나면 안 본 것보다 더 그리운 것이 자식의 얼굴이니까.





자대 배치


겨울이 없다면 봄은 그리 즐겁지 않을 것이다. 고난을 맛보지 않으면 성공이 반갑지 않을 것이다. (앤 브레드 스트리트)


해질 무렵,


자대 배치를 수색중대로 받았다는 아들의 전화에 아낸 걱정이 크다. 무얼 수색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고생하는 곳이라는 정보를 핸드폰으로 검색한다. 제대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아들 못지않게 아내의 마음도 추운 겨울이다. 기갑여단으로 간 그 많은 인원 중에서 하필 우리 아들이 그리로 갔냐는 볼멘소리에 물기가 묻어 있고. 그러나 집 떠나면 다 고생이지, 힘들지 않은 군생활이 어디 있을까. 군대도 사회도 가장 힘든 일을 하는 게 낫다. 기왕이면 모두가 힘들다고 인정해 주는 일을 하는 편이 고생하고도 고생한단 소리 못 듣는 편보다 훨씬 낫다. 이제 아들에게는 봄이 오는 일만 남았으니 너무 애태우지 마십시다, 여보.





이등병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이문재, '농담' 중)


지금,


아프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더 멀리 더 청량한 종소리가 세상에 퍼지기를 염원하면서. 생일이 다가오는데 백일 휴가가 불투명하다는 아들을 만나러 속초를 다녀오다. 102 보충대에 들여보낼 때와 신교대 수료식 때에 비해 훨씬 더 야윈 모습에 아내는 가슴 아파하지만, 나는 딱 보기 좋다며 애써 태연한 척한다. 그래도 자식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따름이다. 5월이면 작대기 하나를 더 단다며 주머니에서 일병 계급장을 보여주는 아들. 옛날 군대가 아니에요, 힘들지 않아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힘들지 않다는 아들의 말과 살이 쏙 빠진 얼굴의 부정합이 아내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는 것, 안아주고 싶을 때 안아 줄 수 없는 것. 우리는 무엇을 하고 싶은데 못할 때 아프다. 특히 어쩔 수 없었던 아픔보다 어쩔 수 있었던 아픔이 더 아프다. 남아 있는 귀대 시간이 아까워 아야진항 앞바다를 걸으면서 생각한다. 아들도, 아내도, 그리고 우리 모두는 더 곧고 멀리 가기 위해 아파하는 거라고.





일병


"엄마, 왜 날 낳으셨어요?"
"내가 널 낳은 게 아니라, 네가 날 찾아온 거야..."
그래 맞다. 세상이 나를 낳은 게 아니라, 내가 찾아온 세상이다. 원망 멈추고 열심히 살아야겠다.(2010. 10. 26. 페북 글)


오늘은,


작대기 두 개 아들의 생일. 아들이 우리 부부를 찾아온 날이다. 며칠 전 면회를 다녀왔지만 그래서 더 그립다. 그리움은 만나지 못한 세월에 비례하는 게 아닌 것 같다. 한동안 보지 않았을 때는 견딜만했는데 막상 얼굴을 보고 오니 더 가슴이 아리다. 김정운 교수는 <남자의 물건>이란 책에서 그리움은 ‘그림’ 혹은 '글’과 그 어원이 같으며, 종이에 그리는 것은 그림이나 글이 되고, 마음에 그리는 것은 그리움이 된다고 했다. 보고 싶은데 볼 수 없을 때, 우리는 그 대상을 마음에 그려 놓고 위안을 삼는 모양이다. 덧칠하며 그리는 유화처럼 내 마음속 그림이 완성되면 아들을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군대 간 아들을 둔 모든 부모들이...





상병


깊은 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는 물고기처럼, 험한 기슭에 꽃 피우길 무서워하지 않는 꽃처럼, 길 떠나면 산맥 앞에서도 날갯짓 멈추지 않는 새들처럼. 그대 절망케 한 것들을 두려워하지만은 않기로, 꼼짝 않는 저 절벽에 강한 웃음 하나 던져 두기로, 산맥 앞에서도 바람 앞에서도 끝내 멈추지 않기로. (도종환, '다시 떠나는 날' 중)


부대로 복귀하는,


아들을 태워주고 오는 길에 벌써 아내는 '아들이 보고 싶다.'는 말을 한다. 고작 4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하지만 아내의 보고 싶다는 그 말에 나도 그만 가슴이 먹먹해진다. 휴가기간 내내 아픈 허리 치료하느라 꿀 같은 시간 다 써 버린 아들이 애틋해지고... 정말로 세상 말 중에 '보고 싶다'는 말이 가장 아픈 말이 맞는 모양이다. 그 말을 하거나, 듣거나, 읽는 순간, 이미 보고 싶어 지니 말이다. 보고 싶은 아들, 다시 집을 떠나 속박의 땅으로 복귀하는 아들에게, 너를 절망케 하는 것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너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결코 무서운 것이 아니라고. 나 혼자 중얼거렸다.





병장


먼저 좋아하는 것을 자꾸 먹어 버리면 그다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죠. 난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이걸 겪어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 통이다.'라고(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중)


말년 휴가를,


나오신다는 말년 병장 아들님을 뫼시러 속초로 달려갔었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는 새벽길을 달리는데 마음을 들뜨게 하는 표지판 하나를 만났다.


"인제 신남"


고맙게도 '이제부터는 신나는 일만 있다.'라고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래, 아들아. 이제 너의 앞에는 신나는 일만 있단다. 마지막 이 고비만 겪어내면 되는 거야. 아들이 앞에 있는 것처럼 말하며 운전대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그렇다, 오늘은 어제의 내가 만들어낸 결과다. 아무리 힘든 오늘이라도 재미있고 신나게 살아내면, 더 신나는 오늘이 내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혹시 일과 사람과 세상이 힘들게 한다면 참고했으면 좋겠다.





RIMG_20140114_141155-20211206.jpg 지금은 없어진 102 보충대, 추운 겨울 연병장에 집결한 까까머리 장정들이 다 아들 같았다.




그 후


드디어 아들은,


더운 여름날 예비군복, 일명 개구리복을 입고 전역을 했다. 하지만 군대 가서 살 좀 빼고 오라는 우리 부부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등병과 일병 때까지만 해도 갸름하니 보기 좋았다. 우리 부부는 역시 군대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말년 휴가를 기점으로 대한민국의 늠름한 병장 우리 아들의 체중은 급격한 회복세를 나타냈다. 무서운 기세였다. 마침내, 제대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과거의 몸집을 달성하고 말았다. 아들은 아직까지 자신의 체중을 우리 부부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