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다.

# 나는 아내가,

by 마음씀

꽃이 꽃에게 다치는 일이 없고, 풀이 풀에게 다치는 일이 없고, 나무가 나무에게 다치는 일이 없듯이, 사람이 사람에게 다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채, '사람이 사람에게' 중)



사랑이란 허울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사람밖에 없다. 사람은 오직 사람으로 인해서 상처를 받는다. 앞서 피는 꽃이나 웃자란 풀, 말 안 듣는 나무... 그 어떤 것도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사람뿐이다. 우리가 섣불리 말하는 '사랑'도 이런 게 아닐까.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물을 주는 것을 잊어버리거나, 일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진행상황을 등한시하거나,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무관심한 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사랑하고 있는 대상의 성장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관심을 유지하는 것, 자유와 마찬가지로 무한 책임을 지는 것. 이런 것이라야 사랑일 것이다.



첫 번째 아니면,


두 번째 결혼기념일이었을 것이다. 나름 우리의 결혼을 기념하려고 호기 있게, 아내에게 꽃(아마 장미 백송이)을 보냈다가 호된 질타를 받았다. 넉넉지 않은 살림 뻔히 알면서, 한 푼이라도 모아야 하는데, 신용카드로 꽃이나 긁는 철딱서니 없는 가장이라며, 아내는 벼락같이 화를 내곤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내가 꽃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다. 어느 봄날 아내가 화분에 핀 꽃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너도 나처럼 고생이 많았구나. 용케 참아 주었구나. 고맙다. 예쁘다."


그렇다. 꽃으로 피기까지 견디어 냈을, 힘든 고초의 시간과 꽃잎 한 장 한 장 담겨 있는 인내의 시간에 대하여 나는 알지 못했다.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줄기와 뿌리가 어떻게 힘을 합쳐 살아냈는지를 헤아리지 못했다. 사람들이 꽃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런 연유란 사실도 말이다. 아내는 꽃에게 자신을 투영하며, 위로하고 위로받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결코 꽃을 좋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R5D_64145-20220526.jpg 그리고 28년 후, 꽃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10억 송이 꽃밭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