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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Dec 07. 2022

나의 뤼에게

# 내 몸에게 소홀하지 않기

티베트에선 우리의 몸을 ‘뤼’라고 부릅니다. ‘뤼’는 임시 거처라는 뜻을 갖고 있으니까, 세르파족들에게 한 생애의 삶이란 그저 하룻밤 나그네가 자고 가는 산협 사이의 허름한 로지와 같은 것이 됩니다. 그들의 소망은 그래서 소박하기 그지없습니다. (박범신, '비우니 향기롭다' 중)



혹시,


나의 '뤼'를 진짜로 '임시 거처' 취급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임시 거처라 해도 머무는 동안 청소도 하고 때로는 꾸미기도 하면서, 소중하게 사용했으면 한다. 불필요한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으면 좀 내다 버리고 말이다. 정신없는 한 해가 갔다. 그동안 나의 '뤼' 속에는 항상 나의 마음이 머물렀기를 기대한다.



내,


마음 두는 곳으로 몸이 가는 법이다. 산에 마음을 두면 몸이 산으로 가고, 바다에 마음을 두면 몸이 바다로 간다. 마음을 좋은 곳에 두면 몸도 좋은 곳으로 가고, 마음을 나쁜 곳에 두면 몸도 나쁜 곳으로 간다는 말이다. 몸이 무겁거나 늘어져 있거나, 부풀어 있거나 또는 아프거나. 그동안 내가 어디에 마음을 두었는지 몸이 증명하는 것이다. 앞으로 마음을 어디에 둘 것인지 신중했으면 한다.



그리고,


언제까지 내 몸이 나의 동반자이자 만만한 벗일 거라 착각하지 말자. 그 오랜 홀대와 기만의 세월을 겪는다면 그 어떤 뤼라도 돌아섰을 것이다. 늘그막의 내 몸이 더 이상 내 몸이 아닌 이유다. 고작 150 고지 동산을 오르는데 하늘이 노랗다면 내 말에 반기를 드는 웬수의 몸이 된 것이고, 내 몸의 눈치를 살펴야 움직일 수 있다면 받들어 모셔야 할 상전의 몸이 된 것이다. 옛날에는 나도 날아 다녔는데... 말하지 말고 더 늦기 전에 조치를 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몸 때문에 마음을 소홀히 하거나, 마음 때문에 몸을 소홀히 하지 말자.





이제 임시 거처에서 나와 내 집에서 주인으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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