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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Dec 12. 2022

누군가와 아무도

# 자유의 주인.


어느 마을에 '모두', '누군가', '아무나', 그리고 '아무도'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마을에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모두'는 '누군가'가 틀림없이 그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았다. 이를 보고 '누군가'가 매우 화를 냈다. 왜냐하면 그 일은 '모두'가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모두'는 '누군가'가 그걸 하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무도' '모두'가 할 일을 하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결국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아무도' 하지 않고 말았다는 것을 알고 '모두'가 '누군가'를 책망하고 있었다. (최명길 엮음, '우리 시대의 동화' 중)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아무도 하지 않는다. 누군가 하겠지 생각만 한다. 다들 손님처럼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나 하면 되는데, 시키는 사람만 있을 뿐 행하는 사람은 없다. 주인이 없는 것이다. 발을 빼고 어떻게 되나 지켜보다가 이러쿵저러쿵 평가하는 사람만 많다. 나부터, 내가 먼저 움직여야 움직이는 세상이다. 그것도 있는 힘껏 들어 올려야 쳐다보는 세상이다. 연극이 끝난 후 관객은 외투와 가방을 챙기고, 주인은 빗자루와 걸레를 챙긴다고 했던가. 인생이라는 연극이 끝났을 때, 과연 나는 주인일까, 관객일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는 헌 빗자루와 헤어진 걸레이기를 소망한다. 주인으로 살자. 지금껏 살아오면서 주인으로 산 세월이 많을까, 손님으로 산 세월이 많을까. 주인의식을 갖고 사는 거라고 학교에서 배웠음에도 손님처럼 사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를 키우거나 집안에 큰일이 닥쳤을 때, 조직에서 공동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 낯이 익지 않은 사람을 만나게 될 때 등등. 인생은 누구나 처음 사는 것, 만나는 일들은 모두가 처음 겪는 일이다. 그렇다면 먼저 주인이 되자. 그래서 이 세월에 대하여 책임지며 살자. 막심 고리키는 <은둔자>에서 자기가 자기 주인이 되는 것이 자유라고 했다. 이제 자유의 주인으로 살자.





내 집이란 그 집에서 내가 주인이란 뜻이다. 내 인생도 그런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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