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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Dec 14. 2022

자발적 유배

# 변(辯)


사람이 한 세상을 살면서 명성과 이익에 골몰하여 고달프게 일하는 것이 죽음에 이르도록 끝이 없다. 과연 무엇을 하는 것인가? 벼슬을 버리고 강호를 소요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공무의 한가한 틈에 맑은 바람, 밝은 달 아래 향기 진한 연꽃과 그림자, 뒤척이는 줄풀이나 부들을 대하거나, 작은 물고기가 개구리밥과 수초 사이를 뛰노는 광경을 만날 때마다, 옷깃을 풀어헤치고 거닐거나 노래를 읊조리면서 노닌다면, 몸은 명예의 굴레에 묶여 있지만, 마음은 세상사에서 벗어나 노닐 것이고,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강희안, '양화소록' 중)



바로 그 틈이다. 


공무의 한가한 틈. 곰곰이 생각해보면 틈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그 틈을 보지 못한 것이다. 그게 뭐라고, 바보같이 일에만 빠져 주변은 물론이고 나 자신조차 보지 못하고 살았다. 출장지로 이동 중에 만나는 맑은 바람과 옥색 빛 바다. 일과를 마치고 숙소 밖에서 기다리는 밝은 달빛과 연꽃 향기는 공무의 시간이 아니지 않은가. 뭐가 그리 바쁘다고 몸과 마음을 옥죄며 살았는지. 그렇게 많았던 한가로운 틈들, 하나도 못쓰고 그냥 보냈다. 우습다, 청백리도 아니면서.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에 빠져, 정작 보아야 할 것들을 보지 못했던 나의 세월이 너무 아까웠다.



인생 살면서 '3 무(無)'를 조심하라 했던가. 


그중에서도 어떤 일에도 감동받지 않는, 감수성을 잃어버린 상태를 가장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겠지, 체력의 고갈보다 더 위험한 것이 심력(心力)의 고갈이니까. 무기력, 무관심, 무감동. 이 '3 무(無)' 가운데 어느 하나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 없었고. 그림과 음악과 시를 좋아했고 누가 울면 따라 울던 까까머리 소년이 그리웠다. 더 늦기 전에, 공무의 한가한 틈이 끝나기 전에, 잃어버린 감수성을 되찾고 싶었다.



잡은 물고기들 중에서


큰 물고기만을 도로 강에 풀어주는 어부가 있었다. 아니, 남들은 큰 고기를 잡으려고 야단인데 당신은 왜 반대인 거죠? 아내가 불만을 제기했고. 우리 솥보다 큰 놈은 솥 안에 들어가지 않잖아, 어부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렇다. 내가 가진 솥보다 큰 욕심을 가진다고 무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감당할 수 없는 큰 욕심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무거운 새는 높고 멀리 날 수 없는 거다. 딱 필요한 만큼만 가지는 것. 음식도 재물도 그리고 욕심도 내가 필요한 만큼만 소용이 있다. 어쩌면 그것이 세상 사람들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고. 결국 나는, 내 마음의 솥에 있는 물고기들 다 방생하고, 빈 솥 하나 메고 유배의 길로 나섰다. 나는 이 자발적 유배의 삶이 너무 좋다.





원예는 잘 못하지만, 나무와 풀은 좋아한다. 그런데 왜 유배지는 하나같이 아름답고 포근한 곳에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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