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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Dec 19. 2022

기억 장수

#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들의 행방.


기억을 팔아 모든 물건을 살 수 있는 시장이 있다면, "언제의 기억을 파실 건가요?"

(김성중, '국경시장' 중)



나는 거기에서 어떤 기억을 팔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기억 중 어떤 것이 가치가 있는 걸까. 음, 값을 많이 쳐 줄 기억은 잘 모르겠으나, 헐값을 받을만한 기억이 뭔지는 알 것 같다. 가족들의 시간까지 끌어모아 힘들게 업무성취를 이루었던, 그로 인해 능력을 인정받았던 직장에서의 기억. 아마 이런 쓸모없는 기억일 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내게는 이런 헐값조차 받지 못하는 기억들도 있다. 이번 일만 끝내고... 놀아 줄게, 미루다 미루다 놓쳐 버린 아이들의 성장에 대한 기억이다. 야근으로 잃어버린 아내의 힘든 일상에 대한 기억이다. 큰 병을 얻기 전에 아내가 그렇게나 말했다던, '나 힘들어, 너무 피곤해.'라는 말들에 대한 기억이다. 아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보다 더 슬픈 건 상실한 기억일 것이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기억 하지도 못한 기억일 것이다. 지금 당신에게 무엇이 소중한 기억인지 똑바로 기억해야 한다. 제발 우리 기억을 기억하자.





기억 장수



내 이야기가 끝나자 A는 입을 떡 벌린 채 나를 뚫어져라 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그 표정은 놀라는 모습과 조금 다른 구석이 있었다. 뭐랄까, 낯선 짐승을 처음 보았을 때의 놀람이 아니라 전에도 본 적이 있는 짐승을 다시 만난 듯한, 그런 놀람의 결이 다른 표정이었다.


"뭘 그렇게 놀라? 실제가 아니고 소설이라니까."

"기억을 팔아 물건을 사는 시장이라 그랬지. 국경시장 말이야."

"그래, 보름달이 뜰 때만 열린다고. 기억으로 바로 살 순 없고, 기억을 물고기 비늘로 환전해야 돼."

"하... 어떡해..."


깊은숨을 쉬더니, A는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오빠, 잘 들어."

"나 보육원에서 그거 겪었어. 어느 날 낯선 사람들이 왔었는데, 내 무의식 속에서 부모 기억을 되살려 집 찾아 주는 거라 했어."

"그 사람들이 씌어준 헬멧을 한 시간 정도 쓰고 있으면 된다고 했어. 그러고 나면 특식이랑 초콜릿 과자를 먹을 수 있어 좋았어. 우리는 그 사람들이 오는 날을 기다렸다니깐." 


기억상실증 환자는 사실 기억을 팔아버린 사람들이 아닐까. 그들은 기억을 읽어버린 것이 아니라 국경시장에서 기억을 물고기 비늘로 환전한 사람들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A는 보육원에서 자랐다. 18세가 되어 사회로 강제 방출되었고, 그때 나와 만났다. 그녀는 유년의 기억이 없다. 부모와 자랐던 집에 대한 기억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기억 장수를 만난 6살 때, 그때까지의 기억을 팔았던 것이다. 가장 소중한 엄마, 아빠, 형제, 강아지, 그리고 집, 골목길에 대한 기억. A는 모르고 있지만 사실 보육원에 온 아이들 대부분이 그런 경우였다.


어리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하는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니 자궁 안에서 이미 기억이 만들어진다. 출생과 동시에 모체와 세상의 압력 차이로 뇌에 압력이 가해져 기억 일부가 상실되긴 하지만, 기억이 만들어지지 않은 건 아니다. 출생 후 소리가 들리고, 눈이 보이고, 촉각이 살아나고 그 모든 경험들은 기억으로 뇌에 저장된다. 다만 그 저장된 기억을 꺼내 쓰는 연결고리가 아직 자라지 않았을 뿐. 그 집게 같은 연결체, 해마는 대략 2~4세경 서서히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래서 2~4세의 기억이 최초 기억이라 인식하는 것이다.


기억이란 어떤 자극이나 학습에 대하여 이를 느끼고 이것을 머리에 아로새겨 두었다가, 자극이 없어지고 나서 그 정보를 다시 상기할 수 있는 정신 기능이라 한다. 인간에게 기억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지적 성장이나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기억한 기억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능력, 난 그걸 가진 인간이 부러웠다.


기억 장수는 엿장수나 고물장수로 위장하고 다녔다. 시골 위주로 다녔으나, 요즘에는 시골에 아이들의 씨가 말랐기 때문에 도시 변두리 위주로 다닌다고 한다. A도 그랬다. 인구 20만 명의 중소도시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집은 도시 중심가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변두리 집들이 골목을 형성하고 있는 동네였다. 거기서 어느 날 만난 기억 장수의 꼬임에 넘어갔던 것이다. 달콤한 아이스바 한 개와 스펀지 빵 두 덩이의 유혹에 말이다.


기억 장수가 급하게 조금은 어설프게 가져간 기억은 A가 기억이라 생각하는 4세~6세까지 3년의 기억이다. 정확히는 2년 7개월의 기억이다. 기억 중에서도 부모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따뜻한 사랑의 기억 같은 좋은 기억이 값어치가 높다. 남에게 친절을 베풀거나 웃음을 주거나 행복하게 만들어 준 기억은 좋은 기억이다. 성취감을 맛보았던 성공의 기억들,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받고 인정받은 기억도 좋은 기억으로 분류된다.


반면, 호된 매질을 했거나, 협박, 위협, 공포심, 겁에 질리게 했던 기억은 나쁜 기억이다. 사람을 울게 만들고 겁먹게 만들고, 무슨 일을 시도도 하지 못하도록 나약하게 만든 기억은 최고등급의 나쁜 기억이다.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상처로 간직하고 있는 생생한 기억 역시 나쁜 기억으로 분류된다.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으로 분류하는 기준은 바로 기억의 쓰임새다. 알다시피 과학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아직 혈액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의 기억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통 치매라고 부르는 알츠하이머병과 고령화의 부산물인 노인성 치매 환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고, 단기 기억상실증도 널리 퍼져 사람들은 깜빡깜빡 건망증을 감기처럼 단 채 살고 있다. 


기억 장수가 매집한 기억들은 이렇게 기억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 치료에 사용되고 있었다. 공식적으로 허가하지 않는 치료재인 까닭에 엄연한 불법 의료행위이고, 고가의 비용 때문에 아무나 받을 수 없는 치료방법이지만, 또 치료효과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었다. 다만 좋은 기억이 나쁜 기억보다 치료효과가 더 좋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을 뿐이다. 실제로 좋은 기억으로 치료받은 환자는 행복한 표정을 짓지만, 나쁜 기억을 주입한 환자는 치료 후 난폭해지거나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고 했다. 따라서 나쁜 기억은 가져가지 않는 게 보통인데, A를 찾은 그 기억 장수는 가리지 않고 깡그리 긁어 갔다. 


A는 아이스바와 스펀지 빵을 다 먹고 나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여기 어디? 나는 누구? 이제 뭐하지? 골목길에서 기억 장수를 따라 기억 추출장비가 있는 봉고차 뒷좌석에 앉았던 것은 기억이 났다. 차에서 내려 아이스바를 핥으며 집이 있는 골목을 향해 걸었으나, 그것은 그녀의 착각이었다. 기억의 잔상 때문에 처음의 방향은 맞았으나, 아이스바가 다 녹을 무렵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향하려 했는지, 이미 모든 방향에 대한 기억을 상실했던 것이다. 결국 A는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고, 눈물과 콧물, 땟물이 섞여 그녀의 얼굴을 영락없는 미아로 바꾸어 놓았다.


"너 집이 어디니? 길을 잃어버렸어?"


그렇게 어떤 친절한 아주머니의 손에 이끌려 파출소와 동사무소를 거쳐 보육원으로 입소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건 우리만 아는 사실일 뿐이다. A는 기억하지 못하는 비밀이다.



내가 국경시장 이야기를 하자, A는 정말로 놀라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보육원에서 나쁜 사람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기억을 빼앗겼다고 믿고 있다. 그녀 스스로 기억 장수에게 기억을 팔아넘긴 사실을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A도 자신의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어떤 사람들과 같은 부류였던 것일까. 우리의 기억이 그러하듯 A의 기억도 결국 그녀의 '착각 기억'이었던 것이다.





기억하는 일이 힘겨워지는 때가 오더라도, 어떤 기억만큼은 어떻게든 기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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