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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Oct 26. 2023

나와 경쟁하고 싶지 않아

# 동행하기로 했다.


길에서 만나게 되는, 


초보 운전자의 자동차 뒷유리 경고문들.

  ㅇ 먼저 가, 난 이미 틀렸어.
  ㅇ 뒤에서 빵빵! 하니, 하늘도 울고, 아기도 울고, 나도 울고.
  ㅇ 답답하시죠? 지는 환장 합니다.
  ㅇ 당황하면 후진함, 후진 전과 10회.
  ㅇ 왕초보 운전, 직진만 5일째.
  ㅇ 언니, 제 운전 맘에 안 들죠?
  ㅇ 초보운전, 시댁 가는 중.
  ㅇ 살려 주세요, 이러다 부산까지 가게 생겼어요.
  ㅇ 뭘 봐, 초보 첨 봐?
  ㅇ 극한 초보, 지금까지 이런 초보는 없었다. 이것은 액셀인가 브레이크인가.
  ㅇ 모두 피하세요~ 운전경력 제로!
  ㅇ 백미러 안 보고 운전합니다. 옆으로 절대 오지 마세요!


인생의 도로에서도 저 경고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운전면허를 딴지 어언 사십 년이 다 되어가건만 나는 아직도 운전이 조심스럽다. 가면 갈수록 복잡하고 알면 알수록 어려워지는 세상길 같다. 네비가 있으면 무엇하나, 최종 목적지를 입력하지 못했는데... 인생의 도로에서 나는 여전히 초보운전자일 뿐.



가끔 걷기 싫을 때, 


인도에 보도블록 대신 컨베이어 벨트가 깔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경사진 곳에는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고.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목적지에 갈 수 있도록. 그러다가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뛰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그 생각을 접었다. 사람들은 규정속도를 못 견뎌하는 경향이 있다. 남과 같은 속도로 살아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걸까. 남보다 먼저 종착역에 도착해서 무얼 하겠다는 것인지. 바쁘게 뛰기만 한다. 아무래도 인생의 경기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인생은 원래 후진이나 멈춤 자체가 없는 것으로 설계된 것이다. 앞으로 가는 속도만 조절할 수 있을 뿐이다. 살다가 에스컬레이터나 컨베이어 벨트를 만나면 절대 뛰지 않고 멈추기로 마음먹다.



바둑을 두다 보면,


내가 잘못 두어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지, 상대방이 잘 두어서 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조훈현 국수가 한 말이다. 스포츠 중계에서는 경기의 승패가 '자신과의 싸움'에 달려 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바둑처럼 실수하지 않고 내가 생각한 대로 종국까지 돌을 놓아 가는 것. 인생에서 돌 하나를 놓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무수한 '나'와 싸워낸 결과일 것이다. 의견이 다르고, 방향이 다르고, 용기의 크기도 다른 수많은 나를 이겨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사는 일도 바둑처럼, 상대방이 잘해서 지는 게 아니라 내가 못해서 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삶에서 유일한 경쟁상대는 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더 이상은 나와 경쟁하고 싶지 않다. 누구의 선이 길고 짧은지 다투고 싶지도 않고, 의견이 다르다고 비키라고 소리치고 싶지도 않다. 이만큼 살면서 다른 구석을 덜어낼 만큼 덜어내기도 했겠지만, 이제는 내가 어떤 생각을 하든 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쪽 길이나 저쪽 길이나 결국은 같은 지점으로 모인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남은 생애를 나와 동행하고 싶다. 떨쳐냈던 나의 생각들과 접어 두었던 바람들을 일으켜 세워 어깨동무하며 같이 가고 싶다. 그런 애잔한 마음이 든다.





혼자 가는 게 아니다. 수많은 나와 함께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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