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씀 Apr 01. 2024

소통에 대하여






소통의 막고 있는 아픔들



세종 집에서 잠을 자는 날이면 등이 시려 간헐적으로 잠을 깬다. 침대와 소통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무엇이 나와의 소통을 막고 있는 것일까? 잠시 떨어져 있었다고 낯설어졌단 말인가. 하긴 야옹이 녀석은 이제는 불러도 오지도 않는다. 코 인사는커녕 이 집 식구로 생각하지도 않는 모양새다.


이주은 작가의 <그림에, 마음을 놓다>에 이런 문장이 있다.


사람들끼리 말은 하면서도 마음은 내주지 않기 때문에 자꾸만 사는 게 등이 시린 것처럼 아프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혹시 내가 편견이나 원칙을 사람보다 앞에 두고, 의심과 이기심으로 소통을 방해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선입견과 나 혼자 정한 원칙으로 유리막을 친 채 사람을 대하고 있지 않은지. 그 때문에 사람들의 온기가 소통되지 못해 등이 시린 건지 모른다. 모든 생명은 통하지 못하면 아픈 것이다, 혈관 속 피처럼. 담장 위에 얹힌 유리병 조각에 찔린 것처럼 아프다. 원칙과 편견, 선입견으로 내가 만든 유리 조각들, 소통을 막고 있는 아픔들이다. 평소엔 속이 다 보일 정도로 소통했지만 깨지면 아픈 것들이다.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은 아침. 미처 유리막을 걷어내기도 전에, 온커피를 선물하고 간 따뜻한 이. 사람 덕분에 잠시 행복하다. 아프지 않다.




꽃처럼 향기로 소통한다면



영업의 기본원칙은 인간적으로 소통한 후 제품소개를 하는 것이라 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 상대로부터 어떤 행위를 기대한다면 먼저 감정적으로 소통한 후 요구를 말해야 한다. 절대 요구를 먼저 말하고 나중에 소통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음, 소통을 위해 개발된 스마트폰이 소통을 방해하고 있는 현실을 의아하게 생각하다. 당분간 그 이유를 고민할 듯.


법정스님이 그랬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은 서로가 말 뒤에 숨은 뜻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엄마들이 아기의 서투른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말소리보다 뜻에 귀 기울이기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소통은 소리가 아니라 침묵인 건가? 고요할수록 집중이 잘 되고 소통도 원활한 것인가?


겉으로 드러난 번지르한 말, 옹알거리듯 소심하게 내뱉는 말. 죽창처럼 찔러대는 성난 말, 달콤한 초콜릿처럼 끈적거리는 말. 그리고 우리가 잘하는 차갑고 사무적인 말. 위장하고 있는 말의 형태에 현혹되지 말고, 그 뒤에 숨은 뜻을 헤아리려 노력하자.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면서도, 속으론 저런 뜻을 알아주기를 바라니까. 말이 아니라 마음에 집중해야 한다. 소음이 아니라 그 아래 침묵에.


인간들은 말이나 숨결로써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지만, 꽃들은 서로의 향기로 대화를 나눈다고. 사람보다 꽃이 훨씬 우아한 방법으로 서로를 느낀다고. 적게 만나고, 적게 말하는 것, 만남에는 그리움이 따라야 한다는 법정스님의 말씀에 공감을 한다


물론 사람도 냄새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는 있겠지만, 대화를 나누는 수준은 못 되는 듯하다. 만약 사람도 꽃처럼 향기로 소통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일단 말수를 줄여야 하겠지? 냄새란 물질의 아주 작은 분자들의 비말이고, 향기 역시 꽃을 구성하고 있는 미세한 물질들, 꽃의 아주 작은 분신이니까. 사람의 말도 사람 몸의 아주 작은 일부일 테니까. 바보처럼 쉴 새 없이 떠들며 제 생명을 단축시키지 말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