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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Jul 11. 2024

비 비 비

(RAIN)




비구경


브런치도 멈추고 작업에 매진하여, 봄이 끝나기 전에 차박 캠핑카(차방)를 완성했으나, 아내의 컴플레인이 있어 다 뜯어내고 다시 작업을 해야 했다. 내심 나 역시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전자레인지를 포기하고 기존 테이블 높이를 낮췄다. 옛날 시골집에서 쓰던 앉은뱅이책상처럼 만들었다. 친숙함과 안정감이 좋았다. 역시 아내 말을 들으면 좋은 것인가.


책상 위 책꽂이를 만들면서, Polk 북셸프 패시브 스피커를 거치하고, LDAC 블루투스 리시버 > 거치형 DAC > 진공관 프리앰프 > 파워앰프 순으로 내장시켰다. 작은 청음실을 꾸몄다. 꿈꾸던 나만의 음악감상실을 드디어 갖게 된 것이다. 볼륨을 많이 높이지 않아도 앉은뱅이책상 위로, 오케스트라와 재즈가수의 모습이 그려진다. 음상이 제대로 펼쳐지니 흡족하다.


때마침 비가 내린다. 2주 만에 남도로 내려온 아내와 비구경을 나섰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차 안에는 음악소리가 쏟아진다. 아무도 시끄럽다 말하지 않는 들판에서 우리는 비를 구경했다. 비가 내리는 바깥을 구경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렇게 세상구경하며 인생을 살자고 손을 잡았다.


구경이란 그 안에선 못하는 것이다. 아니 속에선 하기 어려운 것이다. 밖으로 나와야 있는 것이다. 숲을 나와야 숲이 보이는 이치다. 산을 나와야 산이 보이는 이치다. 구경이란 여기에서 저기를 보는 것이지, 저기에서 여기를 보는 것이 아닐 것이다. 비를 맞아본 사람이라서 비 구경을 좋아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비, 비우기 위해


비 오는 기척에 잠을 깼다. 바람 들어오라 열어놓은 창문으로 해갈의 비가 들이친다. 문득... 짊어질 수 있는 무게보다 더한 무게의 짐을 지고 사는 사람을 생각한다. 자신의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그 짐이 누구의 것이든, 언제부터 지고 있었든, 모두 이 비에 녹아내려 조금이라도 무게를 덜었으면 좋겠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소금실은 당나귀처럼. 


정옥희 시인은 비는 비우기 위해 내리는 거라 했다. 하늘이 자기의 욕심을 감당하지 못하고 왈칵 속을 비워내는 거라고. 하늘처럼 사람도 가끔 속을 비워낼 필요가 있다. 중동 속담에 맑은 날만 계속되면 세상은 사막이 된다고 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선인장에 가시가 돋듯, 사람들 마음에도 가시가 돋는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은 가끔 일부러라도 눈물의 비를 흘려야 하는 것이다. 비 오는 날이면 속이 후련했던 이유를 알 것 같기도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그렇다. 모든 비는 그친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폭우도, 가뭄 끝 고마운 단비도 모두 그치기 마련이다. 밤에만 내리는 야행성 장마도 결국은 그치는 것이다. 지금 인생에서 침울한 비가 내리고 있다면 온몸으로 맞았으면 좋겠다. 그칠 것을 아는데 뭐가 두려울까. 그친 뒤 진짜로 비로 쓸어낸 듯 말끔해진 세상 풍경이 너무 좋다. 고통에 대한 사람들의 대응방식은 두 가지라고 들었다. 비처럼 씻어버리거나, 눈처럼 덮어버리거나. 같은 눈물 펑펑 쏟더라도, 비처럼 씻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같은 눈으로 포근하게 덮어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 눈이 녹으면 다시 고통은 드러날 것이므로.




소풍날에는 비가 내리고


추억해 보면 소풍가방에는 환타, 양갱, 그리고 삶은 계란이 빠지지 않았다. 소풍 가기 전날에 너무 설레었기 때문일까. 소풍날 아침에는 틀림없이 비가 내렸다. 이렇게 날만 잡으면 비가 오는 전통은 학교 소사 아저씨가 연못의 이무기를 죽여서 그렇다는 소문을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어른이 되면 사람들은 인생을 소풍처럼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학기 내내 소풍을 가는 학교는 없기 때문이다. 그냥 회사를 학교라 생각하고 가끔 소풍을 다녀올 것을 권한다. 봄소풍, 가을소풍은 물론이고 여름소풍, 겨울소풍 그리고 느닷없이 떠나는 묻지 마 소풍까지. 절대로 연말에 소풍날을 돈으로 바꾸는 바보짓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슨 일을 앞두고는 절대 들뜨지 않고 무심하게 살 것도 주문한다. 아름다운 그대 인생의 소풍날 내내. 그렇지 않으면 그날 아침마다 비가 내릴 테니까.





잠시 내려놓고 비구경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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