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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Sep 30. 2024

좋은 비누


비누는 쓸수록 물에 녹아 없어지는 하찮은 물건이지만 때를 씻어준다. 물에 녹지 않는 비누는 결코 좋은 비누가 아니다. 자신을 희생하려는 마음 없이 몸만 사리는 사람은 녹지 않는 나쁜 비누와 같다. (존 워너메이커)



살다 보면,


왜 나만 이렇게 힘이 드는 거야, 세상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럴 것 없다. 시간을 보내는 것에는 반드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 모든 것에 대하여 대가를 지불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심심하지 않은 대가, 외롭지 않은 대가, 불행하지 않은 대가, 배고프지 않은 대가 등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합당한 희생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비누가 때를 씻어내는 대가로 제 몸을 녹여내는 것처럼, 우리도 비누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힘든 건 정당한 일이다. 지금 상처 입고 고통스러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누구의 탓도 아니니 세상을 원망할 것도 없다. 오히려 제 몫의 대가를 꿋꿋하게 치르고 있는 자신을 칭찬해야 하지 않을까. 스크래치 하나 없이 마알간 비누는 좋은 비누가 아니다. 나는 이미 좋은 비누로 살기로 다짐하지 않았던가. 희생을 치르고 보답을 해야 하는 세상이다. 직장이든, 가정이든 비누의 역할을 다하며 살자.



나는 비누다.


좋은 비누인지, 나쁜 비누인지를 떠나, 내가 비누란 사실은 틀림이 없다. 지금껏 살면서 내 삶 구석구석 묻은 때 씻어내느라 내 몸은 얼마나 닳았을까, 또 마음은 얼마나 녹아내렸을까. 측은하고 아련한 생각에 가만히 나를 내려다본다. 이 나이 되도록 나는 어떤 비누였는지. 닳을 만큼 닳아 헌 스타킹 속에 조각조각 들어앉은 모습인지, 방금 포장지를 벗긴 듯 매끈한 새 비누의 모습인지, 거칠고 오래 사용한 흔적은 있으나 아직 도톰한 모습인지를.



내가 죽어야,


너와 세상이 산다는. 이런 빌어먹을 환경을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비누에게 공존의 삶은 허용되지 않는 것일까. 비누가 살려면 녹지 않아야 하는데. 녹지 않는 비누는 비누가 아닐 것이다. 때를 벗기는 데 일조하지 않았으니 녹지 않았을 것이다. 거품이라도 났으면 인정이 되었을까. 하지만 거품만 야단스럽고 때를 씻어내지 못하는 저 비누는 또 어떻게 한단 말인가.



월급은,


내가 회사에 공헌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기회손실 대가로 받는 것이라고 한다. 내 희생의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비누의 살점을 덜어내어 얻는 가치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나는 내 인생의 어떤 일을 희생하며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그것을 비누로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니 허투루 살지 말자. 흘려 살기에는 너무나 억울한 비누의 시간이 가고 있다.



비록,


녹록지 않은 인생들 돌보느라, 여기저기 헤어지고 닳았어도, 세월의 강물에 많이 녹았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세상 모든 비누에서 향기가 났으면 좋겠다. 저마다의 향긋하고 달콤한 인생의 향기가.





방 안에 녹지 않은 비누, 새 비누가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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