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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Oct 29. 2024

반반한 판자


가령 반반한 판자를 굽은 판자 위에다 두면, 아래에 있는 굽은 판자도 반반하게 된다. 사람도 이와 같아서 바른 사람을 위에다 앉히면 백성이건 부하건 스스로 바르게 되어 심복 하게 될 것이다. (논어)



그동안,


맡았던 업무 수행을 위해 참 많은 공공기관을 방문했다. 부여받은 권한으로 적게는 반나절, 많게는 며칠을 그 속에 머물기도 했었다. 자리를 잡고 가만히 있다 보면, 기관의 돌아가는 분위기, 그리고 숨어 있던 문제들의 윤곽을 볼 수 있게 된다. 흙탕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그럴 때,


항상 느끼게 되는 것은 반반한 판자의 중요성이었다. 가장 위에 있는 판자가 반듯하지 않으면, 그 기관 전체가 비뚤어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가 선택한 사람이 그중에서는 가장 반듯한 판자였기를 소망해 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결국 조직은 틀어지고 붕괴되기 직전에 이르고 만다. 그제야 비뚤 대로 비뚤어지고 썩을 대로 썩은 판자를 걷어내 보지만, 굽은 판자는 이미 퇴직하고 없고, 새로 온 판자는 영문도 모르고 있다. 먹튀 판자는 정말 최악이다.



사람에게 병이란 무엇인가. 


퍼즐의 한 조각처럼 제 위치를 떠났거나, 제 자리에 있더라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부위가 생겼다는 말일 것이다. 조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조직의 한 부분을 차지하던 누군가가 떠났거나, 혹은 떠나지 않았어도 떠난 것처럼 더 이상 교감할 수 없을 때, 그 조직은 아픈 것이다. 조직검사를 해보면 아마 종양으로 발견될 것이다. 상하좌우 어느 방향으로도 소통하지 못한다면 굽은 판자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살면서 반듯한 판자를 만나, 


나의 굽은 점을 돌아볼 수 있는 것도 복이라 생각한다. 자기가 휜 줄 모르고 아랫 판자만 호통치는 판자가 많은 세상이다. 위에 있는 판자가 휘었다고 따라서 휘진 말았으면 한다. 어떻게든 똑바른 자세를 견지하며, 아래에 있는 판자들의 휘어짐을 방어해야 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자리는 비워져야 다시 채울 수 있다. 조직에서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은 없다. 반반하지 않은 판자를 걸러 낼 수 있어야 더 좋은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반반한 판자를 위에 앉히는 것도 가운데 판자의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



나는 어떤 판자였던가.


아이들과 아내 앞에서, 혹은 나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구부정한 시선과 비뚤어진 사고, 옹이처럼 경직되고 굳어버린 태도로 그들을 강압하진 않았는지. 편협한 신념으로 시종일관 그들을 몰아붙이진 않았는지. 그동안 어떤 판자의 모습으로 살았는지 돌아보며 묻는다. 이제부터 반반하고 올곧은 판자로 준비가 되었는지.






어떤 판자로 산다는 건 팔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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