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에 때가 묻으면 신발이 무거워지고, 신발이 무거우면 몸이 무겁고, 몸이 무거우면 영혼 또한 무거워지는 것이니, 걷는 일도 반성하라. 걸으면서 반성하라, 네 발자국 소리를 잘 들어라. (유용주,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중)
가벼운 발걸음으로 세상을 걷기 원했다.
하지만 많이 걸으면 걸을수록, 열심히 걸을수록 신발은 무거워지고, 걸음걸이는 더 힘이 들었다. 가볍게 걷는 법은 없는 걸까? 지금까지 적지 않은 길을 걸어오는 동안 내게 들러붙은 진흙 같은 욕심들을 본다. 나는 신발을 벗어 들고 탈탈 턴다. 물질이든 비물질이든 이렇게 털어내며 살아야 할 것 같았다. 좌우 어느 쪽 신발이 무거운지 가늠하며, 뒤뚱거리지 않게 걸어야 할 것 같았다. 그저 균형 잡힌 가벼운 걸음으로 세상을 걷고 싶었다. 평생 그러고 싶었다.
같이 산 신발인데도 한쪽만 닳는다.
완벽히 균형 잡힌 사람은 드물다는 뜻이리라. 살수록, 열심히 살수록 세상의 때가 묻어 신발이 무거워지기 때문이리라. 그러면 좌우 안팎의 균형이 흐트러지게 되고,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는 신발 주인이 된다. 그럴 땐 걸음을 멈추고 한쪽만 닳은 신발을 들어보아야 한다. 내 삶의 방식에 문제가 없는지, 세상을 걷는 나의 행보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는지, 이따금씩 이따금씩 돌이켜 보아야 하는 것이다.
닳지 않은 신발을 본다.
둘이 살면서, 한 사람의 마음이 닳아 있으면 같이 사는 일이 힘든 것이다. 한쪽의 신발로는 걷기 힘든 것처럼. 아 지금까지 삶의 하중을 한 사람에게 감당케 했던 게 아닌가, 후회를 한다. 그 사람의 헌신에 기대어, 나 혼자 닳지 않은 신발로 살고 있는 것 같아 눈물이 난다. 그러나 지난 세월만큼 미안한 세월이 더 흐른 후에는, 우리가 골고루 곱게 늙은 한 켤레 신발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