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이 필요해

by 완뚜

잘 죽었다.

참 후련하겠다.

나는 그를 기억하며 그런 마음을 먹는다.


그의 짐스럽던 삶이, 책임으로 점철된 가족이라는 이름의 행태들이 조금씩 내 눈에 들어 왔다. 그의 의도로 가려져 있던 진실을 대면하면서 나는 뜨겁고 당황스러워서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그가 불쌍해 오늘도 서럽다. 나의 천사, 나의 남편은 그렇게 철저하게 내 방패가 되었고 눈 가리개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가끔 내밀던 도움의 손길조차 '너는 그럴 필요 없다. 안 된다.' 며 나를 밀어 내었다. 그래 그런 남자라 나는 그 긴 시간 공주로 살 수 있었나 보다. 세상 물정 모르고, 모든 게 좋기만 한 철없고 인생이 쉬운 공주님은 그래서 미운 사람도 없었다.


어떤 게 사실인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사실일 거라는 추측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 넘겨 짚은 사실 앞에서 자꾸만 미운 사람이 늘어난다. 그중에 제일 미운 한사람은 누가 뭐래도 내가 될테다. 그때 조금만 일찍 생각을 해 보았더라면, 아니 몰랐더라도 매사 신중한 그를 믿고 안아 주었더라면 후회는 남지 않았을까? 어쩌면 죽음이 그가 선택하지 못했던 수많은 탈출구 중에 하나가 되어 주지 않았을까? 그렇게 나는 변명을 늘어 놓는다. 준비되지 못했던 죽음일 지 언정 약간의 당위성 내지는 위로를 찾는 중이다. 억울하면 안되니까. 내가 견디지를 못하겠으니까. 그가 억울하면 나도 억울해지고 아들도 억울해지고 결국 하늘을 원망하고 인생을 원망하게 될 테니까. 그러니까 힘든 것들 다 내려놓고 잘 죽었다. 그래 그러자.


장남과 가장의 무게를 내색하지 않고 혼자 꿋꿋이 견뎠던 그를 존경한다. 미친, 이제 와서?


떠난 뒤 그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의 고단함을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죄인이고 내일도 죄인이며 죽는 날까지 그에게 부끄러울 거 같다.


미안하다는 말도 못할 만큼 나는 그에게 미안하다. 짐을 혼자 짊어지고 아내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 하던 그를 이제야 바라 본다. 나를 제외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방어막을 쳤었는지. 그때는 나를 포함시켜 주지 않고 혼자 알아서 하던 그를 가끔 원망했었지. 나를 무시하는 줄만 알았지. 그것은 그의 사랑 포현법이었는데.


현을 좀 하지 그랬어. 내가 조금이라도 눈치 챌 수 있도록 얘기를 좀 해 주지 그랬어.


당신의 십자가는 어째 그리 무거워서 깔려 질식하다가 그렇게 꼴깍 숨까지 넘어가 버리니? 그럼 남은 우린 어쩌라고 혼자 감당한 거니? 징징거리기라도 좀 해 보지 그랬어. 내가 당신이 징징거려 주길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래 주기를 얼마나 바랐는데.


예전에 그랬지. 내가 할 말이 없어서' 안하는 줄 아냐고, 다 할려면 끝이 없어서 안하는 거라고, 그때라도 말을 좀 하지 그랬어? 내가 못 알아 듣더라도 막 쏟아 부어버리지 그랬어.



운명은 왜 이리 잔인하기만 한 지.


당신 첫 제사를 준비 중이야. 며칠 째 내 정신이 아니네.

그동안 혼이 빠진 듯 살아 보려고 설쳐 대었더니 고장 안난 곳이 없네. 일단 급한 것 부터. 내려 앉은 디스크 뼈를 시술하기로 했어. 무서워 죽겠는데 당신은 없네. 당신이 없으니 병원도 못 가겠는데 어떻게 해? 옆에서 손 잡아 주는 당신이 없는데 나는 어떻게 하냐고.


시술 후 아픈 정신을 겨우 붙들고 앉아 있는데 옆 환자 부부가 보이네. 남편은 아내가 얼굴을 찡그릴 때 마다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이네. 당신도 나 따라 다니며 저런 표정 많이 지었었는데. 당신이 보고 싶네. 찡그리던 당신, 물 먹여 주던 당신, 뭐 먹고 싶어?' 라며 허리를 톡톡 두드려 주던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이 나네. 부끄러워 슬쩍 눈물을 훔치는데 기어이 시야가 흐려지네.


당신 제삿날이 내일인데, 오늘 밤 내 꿈 속에 만나러 와 주면 안될까? 내가 많이 보고 싶은데. 당신 목소리 너무 듣고 싶은데. 안 되겠지? 안 될꺼야! 원하는 건 안되더라고.


살아보니까 그렇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