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나쁜X, 저건 인간도 아니야. 악독한 X."
그렇고 그런 막장 드라마를 보며 엄마가 자주하는 말이다. 그 옆에서 그래도 나는 평생 죄 짓고 살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내게 독하게 화내는 사람은 없을 거라며 안도한다.
그래서였다. 나는 비교적 착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였으므로. 가슴 무너지는 일을 겪으면 그나마 착하게 산 나에게 왜 이러시냐고? 도대체 내가 뭘 잘못 했냐고 신에게 바득바득 대든다. 아무 죄도 짓지 않고 착하게 살아오지 않았냐고, 큰 죄 지은 건 없지 않냐고 그렇게 원망한다.
막장드라마의 악녀는 클라이막스를 넘어서며 점점 궁지로 몰리고 결국 죄값을 받는다. 드라마의 넘어설 수 없는 공식이 바로 권선징악이다. 악녀는 절규한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나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버틴다.
아이구야, 미쳤구나 내가.
최근 내 머릿속에 가득한 생각들, 악녀가 소리 지르는 그 말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아주 많이. "신의 뜻대로 도둑질도 안하고 말썽도 안부리고 남에게 해도 입히지 않았잖아요? 내가 뭘 잘못했는지 말씀을 좀 해 보세요 네?" 조르며 원망의 덩치를 키운다.
최근의 나는.
심장을 할퀴며 상처 입었던 것도 모자라 이제는 신체에 고통을 가하시냐며 신에게 약간은 토라져 있었다. 기도는 형식적이 되었고 내용은 원망을 담았다. 아팠다. 심하게 상처 입어 헐어버린 심장에 겨우 붙어 있는 생명인 줄 알았건만, 그나마 멀쩡하던 육신이 고장나기 시작하니 겁이 났다. 이러다 책임을 다 마무리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마치 앞길에 스톱 팻말이 걸린 것처럼 답답하다. 두려운 하루 하루가 흘러간다. 몸은 쉽게 회복되지 않고 병원 문지방이 닳을 지경이다. 마음만 급하고 신체의 회복력은 마음과 따로 놀고 있었다. 나는 막장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되고 싶었다. 드라마는 역전이 가능한 결말의 룰이 있다. 아직은 깨어지지 않은 그 룰 덕에 시청자들의 속이라도 후련하다. 그런데 내 인생에 이런 역전이 가능이라도 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야 그나마 살 수는 있으므로. 숨이라도 쉴 수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역전을 꿈꾼다.
이제는 안다.
몇 달 동안 계속된 질문에도 묵묵부담이던 신께서 하필이면 딱 그때에, 화장실에 다녀오며 몇달째 아파서 질질 끌고 다니는 다리에 온통 신경이 가 있는 상태로 모든것이 절망적이라 포기하고 싶었던 그때에 뒤통수를 쳤다. 화끈하게 내지르는 깨달음에 뒤통수가 얼얼하다.
'정신차려. 많은 사람들이 이쯤은 괜찮다고 생각하며 죄를 저지른다. 잘못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에 조금 더 기울어진 판단으로 선택을 하고, 그 결과로 일을 벌인다는 걸 너는 아직도 모르느냐. 너도 그렇다는 걸 알 때도 되지 않았나? 그 일로 누가 다치는 건 계획에도 없었지만 상처입은 사람은 필시 있었을 것이다. 단지 네가 모르고 넘어갔을 뿐이다. 너는 죄를 짓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지은 죄를 깨닫지 못할 뿐이다. 어쩌면 알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라고. 너의 허물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래서 너에게만 유독 관용적인 이유로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라고. 그 짧은 시간에 섬광처럼 내게 알려 주신다.
그동안 아프고 당황해서 이럴 수는 없다며 질질 짜면서 매달렸었다.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원망의 눈빛을 발사했다. 이 눈빛에 최소한 신의 심장에 작은 스크레치 정도는 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너무도 답답한 나머지 멍청하게 다리를 끌며 걸어가는 내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치신 건 아닌 지.
깨달음을 주신 건 맞는데, 그래서 더 이상 원망할 수도 없게 만든 것도 맞다. 그럼 이제 어쩌지? 무슨 죄인지 성찰할 수 있는 그릇과 지혜라도 함께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도 무지하여 지은 죄를 찾을 수가 없다. 문제만 훅 던져지고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인생 속에서 여전히 허우적 댄다. 알아서 기어나와 보라고 하시는듯 하여 원망이 다시 스멀거린다. 어찌해야 할까?
내 인생은 아직도 막장 드라마 같은데요. 역전이 가능은 할까요? 저녁드라마의 똑 같은 엔딩처럼 그런 아름다운 역전 말이에요. 아! 답답하다. 몸이 아프니 마음이 더 답답하다.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치료하자던 치료사의 말이 위로가 되지 못하는 오늘, 이 날이 떨어져 내려가고 있던 날들의 끝날 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바닥을 치고 힘차게 올라갔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