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고 하늘하늘한 옷에 뽀송뽀송한 날개를 달고 미소는 또 얼마나 예쁜지 한눈에 반할만한 비주얼을 자랑한다. 눈부신 아름다움을 가진 그를 일컬어 우리는 천사라고 부른다.
온통 새까맣다. 짙은 검정에 둘러쌓인 그는 미소마저도 섬득해 절대 눈을 맞추고 싶지 않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크고 검은 날개는 공포감을 조장한다. 땅에 뿌리박힌듯이 서서 내려다 보고 있는 저것은 악마이다.
천사와 악마.
절대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이 짝은 이루고 있지만 모와 순 처럼 극단적인 다름을 자랑하는 그것.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나는 맹자가 주장하던 성선설을 믿는다. 인간은 누구나 선하게 태어난다. 다만 삶이 그를 악하게 만든다. 본인은 악이라 생각하지 못하고 한 어떤 행동이 때로는 상대에게 악으로 다가 가기도 한다. 선악은 그렇게 경계가 모호하다. 누군가에게는 선이 누군가에게 악이 되는 관계의 애매함, 악행에도 이유가 존재할 것이며 존경받는 사람은 받을 만하니 그럴거라고. 그래서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의 선함을 믿는다. 불합리해 보이는 어떤 행동에도 내가 파악하지 못한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살았다. 나름 배려와 긍정의 아이콘이었다. 내가 그렇게 살면 다른 사람에게 상처 받는 일도 적을 거라는 이기적인 욕심도 손톱만큼은 존재한다.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가 천사다. 주변에 천사들이 많으니 삶도 즐겁다. 물론 크고 작은 트러블이 없지 않고 가끔 마음의 상처도 받지만 곧 이해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다. 그렇게 그들은 여전히 나에게 천사같은 사람들이었다.
2020년, 최측근 천사이며 유일한 수호천사였던 그가 떠났다. 홀로 남겨진 것처럼 적막하기만 한 내 삶에 유일한 문제는 먹고 사는 것이었다.
그리고 2021년, 발버둥치며 하루하루 버티던 나는 악마를 보았다. 천사를 가장한 완벽한 악마였다.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절대권력으로 무장했고 나에게 휘두르는 칼날은 무서웠다. 손은 떨리고 심장이 굳어간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도무지 저러는 이유를 알수가 없다. 간단한 설명조차도 없이 갑자기 벼락처럼 휘두르는 칼날은 섬뜩하기만 하다. 머릿속은 지독하게 엉클어졌으며 가치관조차 뒤바뀌는 순간이다. 모든 사람에게 천사였던, 그러나 한 순간에 나에게만 악마같았던 그런 역전의 순간은 당혹이었다. 확신에 가까운 인간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다. 악마란 이해하고 보면 악마가 아니라고 믿었기에 내게 저러는 이유를 찾아보지만 포기다. 어떤 이유든 누군가의 생계를 위협하고 처음의 약속을 저버리며 자신의 결정에 따르기를 고집하는 것에 대해 변명거리는 없다. 그것을 지금부터 나는 악이라 정의한다. 절대적 힘을 가진 누군가의 고집이나 확신이 상대의 삶의 뿌리를 흔들게 한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다.
갑의 횡포는 겪어 본 자 만이 그 고통을 안다. 고통은 예상보다도 크고 아프다. 인간에 대한 신뢰마저 바닥에 버려졌다. 나는 악에 끌려 다니지 않기위해 과감히 뿌리친다.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과감히 아니라고 말하고 그곳에서 빠져나왔다. 내 눈에는 이제 천사가 아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그들을 계속 마주할 자신이 없다. 어쩌면 나는 겁쟁이인지도 모르겠다. 싸워보지도 못하고 물러서는 마음은 이미 지옥이다. 악마가 만들어낸 나만의 지옥.
집에 돌아와 거실에 쓰러지듯 몸을 뉘었다. 세상이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인간의 덕목이라 생각하던 믿음과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진다. 믿었던 도끼였기에 더 아프다. 찍힌 발등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걸을 수도 없을 만큼 상처는 크다. 꼬박 일주일을 땅굴속에서 지냈다. 보다못한 동생이 바람 쐬러 가자며 내 손을 끌었지만 돌아오자 다시 땅굴행이다. 머리는 비워지고 가슴의 상처에 잠식되어 넋을 놓는다. 삶의 의지마저 흔들린다. 누구는 그까짓거 훌훌 털어버리라고 한다. 그러고 싶다. 마음이 따라 주지 않는다. 이미 상처를 입었고 벌어진 상처가 자꾸 커지는 중이다.
전환의 계기는 의외로 간단했다. 아무도 모를 줄 알았고 그래서 더 아팠다. 억울해서 가슴이 답답했다. 나의 착각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사람들의 전화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 역시 인간에게 받은 상처는 인간에게서 치유한다는 말이 정답인 모양이다. 그들의 위로는 약이 되어 상처 위에 뿌려졌다. 땅굴에서 기어 나오며 생각했다. 상처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으나 심장에 흉터가 남을 모양이다. 회복의 속도가 느리다. 나의 수호천사는 영원히 소멸되었고 의지할 곳이 없으니 누구도 믿지말고 경계하며 살아야겠다는 바보같은 결론만 내린다.
천사와 악마의 양면성, 누구나 천사이면서 악마가 될 수있는, 그래서 매사 더 신중해야만 하는 인간관계. 너무 믿다가 악마로 돌변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기 전에 잘 살펴야 하는 건가? 수많은 천사들 중 누군가가 갑자기 악마로 다가올 획률은 얼마나 될까?
시간이 흐르면.
그래서 아픔도 무뎌지고 조금씩 잊혀지고 나면 그때는.
세상 무너지는 일을 겪어 아팠음에도 예전의 나로 돌아가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을 천사라고 말하겠지. 뒤통수 맞더라도 그렇게 살아가는 게 세상살이 덜 무서울 것 같기는 하다. 그렇기는 하다. 뒤통수의 타격감이 아직 생생해 당분간은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못하겠지만, 그래서 두려운 세상이지만 단순한 나는 언젠가는 회복되고야 말것이라 믿는다.
그런 나를 믿는다.
아플때 아프더라도 겁 먹지말고 화이팅!
마음의 상처를 가득 담은체 남편에게 달려갔다. 일년만에 그곳 신부님을 만났다. 함께 간 지인에게 간단한 이야기를 이미 들었던지 신부님이 따스한 음성으로 나를 위로한다. 어찌 그리도 아픈곳만 골라 어루만져주시는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신부님의 당부에 고개만 자꾸 끄덕인다. 따스하게 손을 잡아주시며 어깨를 두드려주시는 그분은 오늘 나에게 천사다. 남편대신 내 마음을 위로하러 내려 온 수호천사였다.
'기도하라, 계속 하느님께 기도하라. 하느님은 모두 알고 계신다. 다른 좋은 일을 준비하고 계실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가지, 건강해야 한다. '
돌아오는 내내 나는 마음이 가벼우면서도 묵직한 이상한 상태가 되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일지라도 어떤 얼굴로 어떤 눈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위로가 될수도 잔소리가 될수도 있다는 걸 오늘 새삼 깨닫는다.
감사합니다. 나의 수많은 천사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