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 16년만에 직장인이 되었다. 운이 좋았다고 다들 잘하라고 열심히 하라고 격려와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력서를 넣을때만 해도 정직원 모집이라 철석같이 믿고 갔던 면접장에서 1년 계약직을 통보받았다. 이변이 없는 한 일년 후 정규직을 보장 받아 안심하며 시작한 직장생활은 녹녹치 않았다. 이정도의 강도라면 정규직 전환후 정년전에 과로사 할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여기저기 몸에서 이상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삶은 이미 벼랑끝에 몰린 을이 되어 있었고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최선을 다하는 것 밖에.
힘겨워서 길고 긴 직장생활이었다. 아프고 슬프고 힘에 부쳤다. 다만 위로가 되어주는 다수의 분들 덕에 웃었으며 버틸수 있었다. 평생 처음 을이 되어 생활하고 있었지만 괜찮았다. 을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기다리던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고 별다른 말을 들은 것이 없어 정규직 전환은 초읽기였다. 적어도 눈치빠른 나는 그렇게 믿었다. 철저히 위선적이었던 절대 갑의 행태를 나는 알지 못했다. 겪은 적이 없으니 무지한 것이었을까? 계약기간은 끝이 났다.
그리고,
일년 더 계약을 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고 앞이 캄캄해졌다. 고민을 해 보라고 한다. 뭘?
저들은 한번 결정한 것은 번복할 수 없다고도 했다. 오직 번복하는 것은 나만 가능한 일이다. 억울해도 무조건 따라야 하는 을이 이런 것이었구나. 사실 그들이 먼저 번복한 것인데 정작 나는 처분만 기다려야 하는 거구나. 이런 거였구나. 절대 갑이 부럽다. 하늘아래 저보다 높은 사람은 없는듯 구는 그 갑이 부러웠다. 그리고 나는 고통스러웠지만 희망이 되어 줄 거라 믿었던 그곳을 버렸다. 아니 내가 먼저 버림받았지만 매달리지 않았다.
벌써 일주일째,
계약직 제의받고 삼일을 울었다. 정규직 아니면 안되겠다고 했더니 임시 근무자를 데리고 사무실에 나타났다. 정신없이 짐을 꾸려 사무실을 나섰다. 내 하늘이 다시 무너졌다. 해도 너무 하시는 하늘의 그분은 나만 못살게 굴기로 작정하셨나 보다. 비가 내린다. 하루 12시간씩 근무하는 날도 있어 많이도 가져다 두었던 개인짐을 바리바리 차에 실고 돌아오던 길, 그 길마저 편안히 가지 못하게 하늘은 비를 뿌렸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 했을까? 집에 돌아와 침대에 웅크리고 누우니 세상이 무서워졌다. 어제의 아군은 색을 숨긴 적군이었고 그렇게 친절히 굴던 사람들은 절대 갑에게 충성하느라 바쁘다. 나도 우리집에서는 절대 갑으로 군림하던 때가 있었는데, 을이 없어지니 그자리도 사라지더라. 그러니 당신도 언제까지 절대 갑일까? 속 시원히 내지르지도 못하고 일주일동안 그 갑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대리인을 통한 통보로 퇴사가 결정되었다. 마지막 인사마저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 마음의 생채기는 영원히 회복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종교인이면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