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선천적으로 건강체질이었다. 연약한척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며 수도 없이 했던 농담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몸의 이상으로 입원수속이 시작되었다. 대학병원의 입원절차는 까다롭다. 남편은 필요한 서류들을 챙겨서 층층이 나뉘어진 곳을 뛰어다녔다. 환자로 분류된 나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보호자가 된 그는 호출벨을 따라 움직였다. 길고 지루한 절차 끝에 병실 침대에 몸을 뉘었다. 남편이 동분서주하며 준비한 물건도 여러가지다. 정리를 마친 남편은 종이컵에 생수를 따르더니 내게 내민다. 뜬금없이 느껴지던 물 한잔을 받으며 "목 안마른데."라며 받아 마셨다. 내가 빈컵을 내밀자, 본인은 두컵을 연거푸 꿀꺽꿀꺽 마신다. 지금 생각해보면 목이 탔었겠구나 싶다. 그렇게 눈치없는 여자가 그의 피보호자였다.
물론 아이를 출산할때도 그는 보호자였었지. 다만 그때는 부모님들이 함께였다. 오롯이 그가 모든 결정과 책임을 지는 상황은 나의 입원이 처음이었다. 내게는 대수롭지 않았던 그 순간이 그에게는 엄청난 부담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시 뇌리를 스쳤다. 그때 그의 미묘하게 긴장해 있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요즘 부쩍 새롭게 깨닫는 것이 늘어가고 있다.
보호자라는 역할의 중요성과 무게감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그 자리의 공석을 실감하며 무너진다. 보호자의 부재를 깨닫게 된 순간의 두려움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병원 대기실에서, 치료실에서 그리고 회복실의 나의 시간은 어색함이었다. 회복실 의자에 앉아 상상했다. 괜찮다며 두드려 주는 손길과 머리를 쓰다듬는 따뜻함을. 그렇게라도 버티고 싶었다. 그의 온기가 필요한 순간은 너무도 일찍 찾아왔다. 결핍은, 정서적 결핍은 아프다. 그냥 아프고 서럽다.
아이의 입시가 시작되고 원서를 내고 학교를 선택하는 일. 각종 서류를 준비하는 일. 부당함에 용기를 내는 것. 퇴사를 결정하는 일련의 과정. 모든 결정 끝은 다가올 미래의 불안함이다. 불안함은 작은 무기가 되어 심장을 조각내는 중이다. 의무를 넘어선 책임감의 무게는 심장에 위해를 가할 뿐이다. 혹시 아프면 어쩌지? 처리 못할 일이 생기면 어쩌지? 내 결정이 잘못된 것이면? 하루가 바늘방석 위에 앉은듯 따깝다. 불안증이 계속 몸집을 키운다. 유아기의 어린아이 마냥 한발자국씩 내디디며 더듬더듬 배워나가는 수 밖에. 그러다 언젠가는 적응도 할 수 밖에. 그것이 나의 운명이라면 받아 들이는 수 밖에. 그러는 수 밖에.
날마다 어색한 한걸음을 떼는 중이다. 보호자라는 몸에 맞지 않지만 해내야만 하는 역할극에 적응하기 위해.
내딛는 한 걸음마다 나의 보호자였던 그가 너무 그리워 또 이렇게 무거운 걸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