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아니지만

by 완뚜

정신없이 슬펐다. 슬픔은 이성을 잠식하고 삶의 대부분을 눈물과 그리움으로 가득채웠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갈 줄 알았다.


현실은 그런 우리를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는다. 계속해서 그가 없는 현실을 기어이 깨닫게 만든다. 매순간 그가 없어 더 슬픈 상황을 마주해야만 했다. 그와 약속했는데. 편하게 가라고 긴 수면에 눈 감은 그의 귀에 수십번이고 되뇌이며 약속했는데. 용감하게 잘 살아보겠다고 약속했는데. 일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중이다.


아이는 입시를 끝으로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코로나라는 특수상황이 있지만 내 눈에는 무너지는 듯 보였다. 사교성 만랩의 아들, 친구가 넘쳤던 아이가 이제 시간이 넘쳐 나는데도 외출을 하지 않는다. 친구를 만나는 횟수가 너무 적다. 연락 오는 전화의 대부분을 거절하는 눈치다. 아들은 희망 학교를 포기했다. 제 방에서 엄마와 친척들에게 설득 당해 선택된 학교 문제로 긴 몸살을 앓고 있다. 옆방에서는 직장을 잃은 엄마가 믿음에 대한 배신감에 아파 침대와 한 몸이 되었다. 간간히 한숨소리만이 배어 나온다. 아들의 학교문제조차 내 탓인듯하여 안방에는 소리 죽인 설움이 가득찬다.

티브이조차 켜지지 않는 거실, 먹는 것조차 뒤로 밀린 주방, 집은 낯선 침묵으로 음침하기까지 하다.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은 잠시간 왔다갈 뿐. 나와 아이는 계속 숨만 쉬고 있다. 우리는 길고 우울한 휴식기를 지나는 중이다.


졸업식을 위해 학교에 다녀온 아들이 모처럼 밝은 얼굴이다.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로 했단다. 해외여행을 좋아해서 꿈조차 한때 스튜어드가 되려고 했었던 아들은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하겠다며 동의를 구한다. 나는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그렇게라도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싶었다.


아뿔사!

아직 미성년이구나. 숙박업소에 미성년자숙박 동의서와 가족관계증명서가 필요하다며 서류 준비를 부탁한다. 처음에는 인터넷으로 발급이 가능하니 일도 아니었다. 다만 출력물을 보고 아차 싶다. 가족관계증명서의 아빠 이름 옆 두글자에 울컥 심장이 요동친다. 아들은 아직 친구들에게 숨기고 싶어했는데 이제 어쩌지? 여행조차 포기하는 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증명서를 아이 손에 쥐어 주었다. 아무 말이 없다. 눈치만 보다가 너가 알아서 하라고하고 안방으로 피신이다. 소파에 멍하게 누워있는 아들 눈치만 본다. 들릴듯 말듯 아들이 작게 속삭인다. "증명서 안내고 싶다." 가슴이 무너진다.


남편을 보내고 각종 업무처리때마다 제출하기 위해 받아든 가족관계증명서는 내게도 아픔이다. 서류를 볼 때마다 상처를 헤집는 기분이었는데. 오늘 아들 손에 그 자해용 무기를 들려주었다. 증명서 가족란에서 가장 뚜렷이 보이는 두글자, 아빠 이름 옆에 두글자 [사망].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고 마음으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두글자. 가장 아픈 단어. 1년 5개월째 인정하지 못했고 여전히 심장이 쪼그라드는 슬픈 글자. 가슴 먹먹하게 그의 빈자리를 깨닫게 하는 서류 속 그의 존재이다.

그의 잘못도 우리의 잘못도 아니다. 서류를 낼 때 마다 그것을 확인하던 담당자들의 표정과 질문들, 그런 상대를 대할 때 마다 죄지은 듯이 초라해지는 나의 존재감이 상처가 되곤한다. 그래서 아들을 그 초라함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상황에 더 많이 노출되어야 할 만큼 자란 아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어떻게 대처하라고 가르쳐야 할까? 결국 어떤 말도 해 주지 못했다. 선택은 아들의 몫이므로. 나는 안방으로 숨어 들었다.


죄는 아니지만,

죄스럽게 느껴지는 어떤 것. 살면서 처음 당하는 그 황당함을 이제 우리는 견뎌야겠지? 무뎌질 시간을 기다려야겠지?

미안. 아들. 엄마가 너무 못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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