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때면 아쉬운 그대

by 완뚜


땅이 나를 끌어당긴다. 간만에 나는 땅과 친한 척을 한다. 납작 엎드려주려 했건만 얼굴이 먼저 친한 척이다.

멀쩡히 서서 이야기를 나누던 동생이 순식간에 땅에 얼굴을 붙이고 있으니 당황할 수 밖에. 사색이 된 언니를 쳐다보며 일어서야 하는데 다리에도 팔에도 힘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 언니의 얼굴에 걱정이 한가득이다.


내가 넘어지는 걸 본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이 똑 같다. 일단 당황하고 황당해하다가 걱정이 가득해진다. 다친 부위보다 그렇게 넘어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 황당해 한다. 나는 평생 겪었던 일이니 이제 창피하지도 않다. 다만 근무하러 가야하는데 이번에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얼굴에 그것도 마스크 위쪽 볼에 뻘겋게 생채기가 생겼다. 생채기 아래가 퉁퉁 붓더니 시퍼렇게 멍이 든다. 한시간 동안 얼음 찜질로 붓기는 좀 가라앉혔지만 일요일이라 약도 밴드도 없으니 최대한 마스크를 끌어 올려 상처부위를 반정도 얼추 가린다. 최근 짧게 깎은 머리는 도움이 안된다. 몇 사람은 걱정스럽게 볼 것이고 몇 사람은 혼자 상상하겠지. '누구한테 맞았나?' 딱 누구한테 맞은 분위기다. 슬프게도.


나는 평생 넘어지는 걱정을 하며 살았고 그 걱정으로 걸을 일을 줄이는 편이다. 무언가 걸려 넘어지면 대비나 하고 조심할 텐데 멀쩡한 평지에 서 있다가도 순간 힘이 풀리며 풀석 넘어져 버리니 나도 당황스럽다.


그래서 남편은 밖에 나갈때 언제나 손을 맞잡는 것이 아니라 팔을 잡아주었고 계단을 내려갈 때는 항상 두걸음 앞서 내려가며 방패가 되어주었다. 처음에는 넘어진 상처만 보고 조심하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하던 사람이 넘어지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이후, 잔소리는 없어지고 대신 팔을 잡고 다니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는 나의 든든한 지팡이였고 안전바가 되어주었다.


오늘, 정확히 지팡이를 잃은지 1년 8개월만에 얼굴과 땅이 조우했다. 뻘건 볼에 약을 덕지덕지 바르고 사무실로 향하는 길에 누군가가 가슴아프게 그립다. 그의 방어막이 그리워 따갑고 둔탁한 통증을 만들어내는 얼굴보다, 심장이 더 따갑다.

앞으로 얼마나 더 넘어지고 다치며 살게 될 지. 순간 힘이 빠지는 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얼굴 상처가 아무는 오랜 시간 그가 그리울 것 같다. 길을 걸으며 단단히 잡아주던 그 손과 앞을 막아주는 든든한 등이 너무나 그리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또 울음을 속으로 삼키는 시간을 보낼 거 같다. 생채기가 아무는 그 시간동안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