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하지. 너무 슬프하지 말라고 죽은 사람은 영원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가슴 속에서 함께 한다고.
예전, 꽤 오래 전,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 나도 그 아이에게 말했었지. '아빠가 항상 너의 옆에 계실꺼야 기운내.'라며. 무슨 멍멍이 소리를 했던 건지. 죽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렇게 헤어진 이별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껄이는 소리였다.
죽음으로 이루어진 이별은 그냥 단절이다.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을 늘일만큼 늘여 당긴 뒤 날카로운 가위로 싹뚝 자르면 순식간에 나가 떨어진다. 팽팽하던 힘의 균형이 깨어지면서 멀리 날아간 둘은 더 이상 서로 연결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잘려 나간 한쪽은 이승에서 괴로워 할테고 나머지 한쪽은 글쎄 어디로 가버렸을까? 영원히 사라진 것만 아니면 좋겠지만 서로에게는 영원히 사라지는 순간이 된다.
그리고 가슴에는 그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덕지덕지 붙어 버린 흉터가 남는다. 그뿐이다. 아프지만 이제 인정해야 할 때이다.
그는 없다. 적어도 나와 소통할 수 있는 어떤 공간에도 그는 없다.
추억, 그까짓 것 때문에 가슴에 생긴 생체기가 딱지로 앉으며 아픔이 줄어들 힘을 잃어버린다. 추억이 심장을 촉촉하게 물들이고 덕분에 좀 힘을 내던 생체기는 다시 벌어지며 눅진해진다. 아마 이때 생기는 진물이 눈물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모든 공간이 그가 없는 모든 공간이 추억으로 기억되니 아플 수 밖에. 공허한 메아리로만 다가오는 나의 울부짖음은 다시 가슴에 생체기를 만든다.
단절.
그래 이별은 단절이다. 절단되어 토막나버린 감정의 단절이다. 아픈 순간이 영원히 인생을 갈라놓는다. 그래서 무섭고 아픈 단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