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굿 나잇

by 완뚜

폭염과 집중호우로 변화무상한 감정의 기복을 겪으며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이맘때가 되면 무너지는 심장을 부여잡고 근근히 버티는 날을 지내게 된 것이 2년째이다. 근 한달이 감정 싸움으로 지쳐갔고 결국 병원에서 정수리에 침을 맞고 누워서야 잠을 청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식으로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는 음력이라는 불편한 날짜 계산이 필요하다. 이성적으로는 아직 꽉찬 2년이 아니지만 어른들의 계산법으로 그의 기일을 맞았다. 남들은 참 빨리 세월이 흘렀다고 이야기 한다. 아니 나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런데 지난 2년은 참 길더라. 하루가 참으로 길고 그 긴 하루를 버티는 힘은 매번 고갈되고 버거웠다. 남편을 놓친 하루, 그날의 하루는 순식간이었기에 미처 내가 어찌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이었다. 그런데 그가 없는 2년은 너무나 지루하고 길기만 한데 그 시간을 여전히 나는 어찌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동안 굉장히 바쁘고 힘들었다는 기억만 존재하고 어떤 시간이었는지는 남아있지 않다. 나는 무엇을 했고 어떻게 살았던 걸까. 살고 싶기는 했을까?


오랜 고민끝에 제사는 지내지 않기로 했다. 쓸모없는 일처럼 느껴졌기때문이다. 지난 제사때 근무에 쫓기며 음식을 준비하고 과로에 지친 몸을 끌고 동분서주해도 당일에 아들과 둘만이 앉아 있던 그날의 거실풍경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너진다. 평소에 제사음식을 좋아하지않던 그의 식성이 죽어 혼백이 되었다고 갑자기 저런 음식이 좋아질리도 없고 준비하느라 지친 정신은 그를 온전히 추모하지도 못했다. 의미없는 행위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 동안 조용히 숨죽여 있던 아이가 결국 터졌다. 아빠가 너무 밉단다. 혼자 가버린 아빠가 미운데 너무 보고 싶단다. 가슴이 아팠다. 먹고 살아야겠기에 미친듯이 돌아다녔고 아들을 먼저 보낸 어른들의 마음까지 헤아려야 했기에 바쁜 와중에 제사를 준비했었다. 그러나 그의 제사는 아들과 나만 덩그러니 앉아 슬퍼하는 풍경이 되었다. 전화조차없는 그남자의 부모형제의 무심함에 마음이 상했다. 아들도 아빠는 바보였다며 속상해하니 더 이상 이런 바보 짓은 그만하자 싶었다. 그래서 둘은 제사를 생략하기로 한다. 조용히 아빠를 추모하고 기억하자고 결정한다.


형제자매가 많다는 건 많은 간섭과 함께 위로도 받는다는 장점이 있다. 기일 전날, 그가 좋아하던 음식들을 준비하고 있던 내게 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납골당에 함께 가자고 한다. 이리저리 연락해 근처에 살고있는 동생들까지 전부 모였다. 평일 오전, 다들 직장과 아이들 학업으로 바쁜 시간인데도 이렇게 시간이 맞추어져 함께이다. 이 남자, 오늘은 참 좋겠다. 딸처럼 키웠던 조카는 이모부가 그렇게 가버린 이후 납골당가는 걸 싫어했었는데 이제 마음의 상처가 조금은 회복되었던지 '당연히 가야지.' 하며 흔쾌히 따라나선다. 오늘 계 탓네. 평소 예뻐하던 조카딸을 보게 되었으니 차가운 대리석 방 안에서 얼마나 좋아하고 있을까. 많이 보고 싶었을 아들, 조카딸이 나란히 그의 앞에서 절을 한다. 고맙고 미안했다. 제사를 포기하고 납골당으로 가겠다는 결정 후 의무를 다 하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었다. 가족들이 함께 해 주며 외롭고 힘든 우리 모자의 위로가 되어 준다. 그들 덕분에 함께 추억하고 함께 웃고 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떤 중요한 날이 다가오면 무슨무슨 주간이라고 하며 그날을 기다리고 준비한다. 나는 두해째 그가 사라진 주간을 기린다. 꼬박 두달간 추모하고 있다. 그가 아픔을 호소하기 시작해 생을 놓은 것까지 꼭 두달이 걸렸다. 그것도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랬던거지 그때는 하루아침의 날벼락이었지. 날짜를 챙기지 않아도 유독 생각나고 마음이 울적해져서 달력을 보면 그날이 다가오고 있더라는. 몸과 심장이 기억하는 그날이 오늘이다. 그에게로 달려간 오늘. 오랜시간 비가 오락가락하던 날씨는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화창하게 웃고 있다. 구름한점 보이지 않는 하늘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산꼭대기 너른 터에서 그와 마주했다. 올해도 작년처럼 처가집 식구들이 그를 기억하고 그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 그가 많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의 앞에서 나는 조금은 미안한 다짐을 한다. "이제 조금씩 내려 놓을 게. 너무 섭섭해 하지말고. 언제나 우리옆에서 지켜봐 줘. 여전히 사랑해."


이제 올해의 추모기간도 끝이 났다. 내년에는 또 어떻게 살아남아 어떤 추모기간을 겪을지 모르겠지만 내년은 올해보다 덜 아팠으면 좋겠다. 이제 길었던 두달간의 우울을 벗고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잘 살고 있을께. 오늘도 굿 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