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단절녀의 처절한 삶이 시작되었다. 기적적으로 새로운 직장에 합격했지만 나의 업무능력을 믿을수 없으니 처음 공지된 것과 달리 계약직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출근과 함께 자잘한 서류들을 작성하고 일년의 계약기간이 명시된 계약서를 쌍방 사인을 넣어 작성했다. 불안감보다 자신감이 컸다. 어디가서 일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었고 대학졸업후 좋은 조건의 첫 직장 생활과 스카웃 형식의 두번째 세번째 직장을 거친터라 업무적인 자신감은 떨어질 수 없었다. 그랬기에 계약직이라도 괜찮겠냐는 면접관에게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다고 잘 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리고 일년의 시간은 최선에 최선을 더하는 힘겨운 직장생활이었다. 원래도 업무가 무지막지 많은 곳이었는데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꿈꾸는 나는 더 많은 업무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꿈에도 몰랐다. 갑은 언제나 갑질이 가능하고 을은 당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직장생활. 드라마에서나 봤지 겪은 적이 없었으니 충격적일 수 밖에.
계약기간이 끝나자 돌연 말을 바꾼다. 철썩같이 했던 약속은 잊어버린건지 무시하는 건지 모르겠다. 일년을 더 계약직으로 일하라는 상의가 아니라 통보를 받았다. 처음으로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이런 경우도 있구나. 나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서로간의 믿음이라 생각하며 평생을 살았고 아이에게도 거짓말이 가장 나쁜 짓이라고 가르쳐왔기에 사람을 믿었다.
특히 사무실의 갑은 대중에게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니 더욱 믿었던 터라 되서리를 맞고 무너졌다.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을도 꿈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과감히 짐을 싸서 사무실을 탈출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많은 업무와 열악한 근무환경과 최악의 근무시간에도 참았던 곳을 이틀만에 정리했고 그때의 상처로 3달 동안 아팠다. 온 몸으로 아프고 괴로워하던 시간 후 나는 스스로를 추슬려 일어서야 했다. 다시 취직을 위해 움직였다.
구사일생 들어간 새 직장도 서로의 업무 만족도를 확인해야 한다고 6개월의 계약기간을 제시했다. 당연히 쿨하게 받아들였다. 모든 사람이 같지는 않을 터이니 이곳은 다르겠지 싶었다. 이번에도 여전히 어딘가 붕떠있는 듯 했고 내 자리라는 생각이 완전히 들지는 않았으며 여전히 불안함을 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쏟아 부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 매일 책상을 마주하고 성격과 업무적인 스타일을 맞추어 나간다는 것은 긴장되고 불편한 일이지만 꼭 해야만 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나름 편안해지고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근무는 어느듯 6개월을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제발 이번에는 갑의 변덕을 겪지 않기를 끊임없이 빌었다.
그렇게 약속한 6개월이 다가왔다. 하늘이 나를 살피고 내 상처를 치유하고자 나선 것인지, 아니면 이번의 갑은 인간적인 신뢰가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인지 하여튼 나는 먼저 손을 내밀어 서류를 만들라는 갑의 지시에 따라 정규직 서류와 계약서를 완성했다. 계약직 일때 최저 임금은 드디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그동안의 경력과 학력이 인정 되었다. 사소한 차이지만 내게는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내 인생을 인정받은 일이었다. 모든 서류가 통과되었다는 관리과의 전화를 받고 내 어깨죽지에서 날개가 돋아 하늘을 날아 다닐 뻔했다. 혼자서 축하하고 혼자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정규직이 된 오늘은 어제와는 다른 마음이 생겼다. 신기하게도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아! 이제 여기가 내 평생 직장이구나.' 마음은 한없이 평온해졌고 내집 같은 생각이 들어 최선에 최선을 다했다고 믿었던 근무보다 지금 더 열심히 임하게 된다. 신기하다.
아마 갑님들은 이런 을들의 성향을 잘 모르나보다. 그러니 그들의 달콤한 계약직 회유가 느는 걸거다.
사람은 겪어봐야 아는 것이 맞다. 계약직과 정규직을 거치고 보니 얼마나 태도가 달라지는지 놀라울 지경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내가 갑이 된다면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계약직은 없게 해야겠다. 나의 일이라 생각하고 임하는 직원이 결론적으로는 직장에 더 필요한 사람일꺼라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천지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