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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뚜 May 12. 2023

엄마가 이상하다



꽤 부자집에서 큰딸로 자랐다는 엄마는 통이 큰 여장부이다. 비록 딸이라 학교를 많이 보낸 것은 아니지만 똑똑하고 현명하여 세상이치를 모르는 것이 없고 전국 도로를 통째 머리속에 넣고 다니는 인간 네비게이션이었다.


칠남매를 키우며 기죽지 말라고 더 가르치고 깨끗이 입히고 잘 먹였다. 자상한 아빠까지 가진 우리는 해맑게 컸다. 비록 엄마의 여장부기질이 숨막히게 싫을때도 있었지만 비교적 평안하게 위기를 극복하며살수 있었다.

그시절, 우리엄마, 장 여사는 최고 권력자 같아 보였다. 언제나 든든한 후원군이었고, 비 바람에 맞서 그자리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우산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엄마는 아픈 곳이 늘어났다. 다리를 절고 허리가 아파 눕는 것이 힘들어졌다. 한 해는 허리수술을 하고 그 다음 해에는 무릎 수술을 하고 녹내장수술을 한다. 점점 아픈 곳이 늘어가고 병원을 달고 산다. 그래도 다행인건 꾸준히 운동을 해 온 덕에 여전히 활기차고 호기심이 많다는 거다. 덕분에 우리 자매들은 해마다 거금을 들여 여행을 보내드려야 하고 수술비를 보태야 하고 집 수리를 해드려야 했지만 건강하니 다행이라 여긴다.


누군가를 잃어본 사람은 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 그래서 더 겁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요즘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정기적으로 친정에 들르고 엄마의 얼굴빛과 눈빛을 살피는 일이다. 얼마 전 동생과 스페인 여행을 다녀오신 이후로 급격히 눈에 띄는 변화를 보며 당황하고 살피는 중이다.


여행이후 얼굴은 파리하고 어깨가 쳐져 기운없어 보인다. 눈은 총기를 잃고 했던 말을 자꾸 한다. 예전 답지않은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보약이라도 지어드려야하나 고민중이다. 자매들에게 얘기해도 별로 심각해하지 않는다. 아마 여독이 덜 풀렸을 거고 늙느라 그러는 걸거라고 한다. 그 말에 맞장구는 치지만 여전히 걱정이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건지, 내가 예민한 건지.


어제 전화 목소리가 쉬어있고 몸살이라며 대답도 잘 못하는 엄마가 생각나 엄마에게 들렀다. 여전히 피곤해 보인다. 어제보다 좋아졌다며 텃밭에 다녀왔다는 엄마에게 화를 냈더니 '갈데도 없고 하루종일 심심한데 그거라도 해야지 어쩌라고. 여기 앉아서 나하고 얘기나 하자.' 는 엄마의 말에 울컥한다. 울 엄마, 강하고 활동적이던 장여사가 너무 외롭고 작아 보인다.


나는 아직 누군가를 보낼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 아직 아픈 상처가 아물지 않은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예민하게 구는 건가. 여독이 덜 풀린 것이기만을 바라며 아무것도 못해 주는 딸이 미안해 오늘도 잠깐이지만 엄마의 말동무가 되어 주며 얼굴빛을 관찰하고 눈빛을 살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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