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완뚜 May 18. 2023

초여름 밤, 꿈이었다


꿈이었다.

나는 꽤나 선명하고 확실한 드라마 한편을 재미있게 관람 중이었다. 그런 꿈이었다. 내가 주인공인 연속극 같은 그런 꿈.

그 속에서의 나는 외롭고 고통스럽다. 삶이 불안하고 내편도 없었으며 슬프다. 느낌이 그렇다는 거다.

아마 어제부터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발치에서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을 피해 폭 덮어 쓴 이불 속에서 평소와 다른 환경이 자아낸 꿈일지도 모르겠다.


꿈은 꽤 선명했다고 생각했고 깨어나 잠시간 기억이 났다가 끊어진 퓨즈처럼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졌다. 신기하고 기이하다. 연속극 같았던 앞 부분은 완전히 까맣게 잊혀졌고 절망적이고 외로웠던 느낌만이 선명하게 남았다. 아이러니하다. 내용은 잊혀졌는데 그 감정과 느낌이 내 몸과 의식에 여전히 붙어 있는 기분이다. 사실 끊어진 퓨즈같은 잃어버린 앞부분은 중요하지 않다. 그후에 선명한 그가 있었다.


앞의 내용을 압도했던 것은 바로 그의 출현이다. 그가 나타났다. 그리고 이때 부터는 너무나 선명하다. 아마도 그렇게 그리워하던 이가 드디어 나타난 것에 기인한 기억의 올인 인지도 모르겠다.


2년 9개월만에야 꿈에서나마 그를 만났다.


가슴저리게 외롭고 두렵다는 느낌속으로 그가 왔다. 내용 자체는 엉키고 설켜 디테일하지 않다. 꿈은 언제나 그렇듯이 개연성이 배제되어 있다. 뜬금없이 불쑥 내 앞에 나타난 그를 본다. 단지 내가 그를 기어이 찾아 냈고 그가 나를 보며 웃는다. 입꼬리만 조금 올린 미소와 슬프게 바라보는 눈빛은 이질적이었고 단정한 머리와 반들거리는 얼굴은 잘 지내고 있구나 싶어 다행스러우면서도 낯설다. 그 가슴에 안겨 응석이라도 부리고 싶은데 주변에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때 그가 내 손을 잡고 나를 이끈다. 그가 앞장서 계단을 오른다. 거의 올라간 계단위에서 저문만 넘어가면 조용한 방에서 그를 껴안고 따스한 온기를 나눌수 있겠구나, 그러면 나는 마구 어리광을 부리며 힘들다고 칭얼거릴 수 있겠구나  싶어서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하필 그때 알람이 울렸고 기어이 잠의 따스함에서 내 의식을 끄집어 올렸다. 나는 달콤한 슬픔에서 깨어났다.

출근할 시간이었다.


가슴이 뻐근하다. 그의 체온을 느끼기도 전에 나는 깨어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가 깍지 끼고 끌어주던 손의 온기가 아직 내 손에 남아 있는 듯 왼손을 만져본다. 그냥 내 체온만 느껴진다. 어처구니 없다.


출근 준비를 하느라 화장대 앞에 섰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아쉽고 아쉬워 눈물이 났다. 조금만 더 보여주지. 조금만 온기를 나눠주고 가지. 미련만 한가득이다.


오늘도 온종일 그의 생각이 날 거 같은 불안한 날이다. 자꾸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아 정차중인 출근길 차안에서 지인들의 이름을 살핀다. 오늘은 누구라도 붙잡고 나랑 놀자고 졸라야겠다.

혼자 땅굴파고 기어들어가고야 말 것 같은 그런 날이다.


이런 날 아침, 출근길 하늘이 참 맑고 파랗다. 유래없이 더운 여름같은 오월의 하루, 어느 날, 34도까지 올라간 여름 준비중인 어느 날, 더워서 짜증까지 더해진 오늘, 하루의 날이 지날 때마다 그와 하루가 더 멀어지는 것만 같아 슬픈 매일 중 하루인 오늘.


기어이 꿈 속에서 미련 남는 해후의 끝, 하루를 잠식 당할까 봐 걱정부터 앞서는 출근 길, 하루를 시작하는 첫 걸음으로 나는 슬픔을 벗어나려 탈출구를 찾는 중이다.



* 퇴근후 지인들과 산책을 다녀왔다. 웃고 사진찍고 미친듯이 까불었다.

집에 돌아와 맥주를 땄다. 여전히 허상이 달라 붙는다. 그것을 붙잡고 생각했다. 그를 그려야겠다. 정면으로 마주하자. 물론 그를 별로 닮지 않았다. 그냥 내 안의 그가 밖으로 쪼금 튀어나온 것으로 위로를 대신한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가 이상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