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완뚜 Jun 04. 2023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행복이 뭘까요?


나는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원하는 행복하고 싶은 대부분의 날은 평탄하기만 합니다. 이런 날들은 즐겁지는 않지만 슬프지도 않고 머릿속이 생각으로 가득하지도 않습니다. 내게 주어진 일을 하고 주어진 시간을 없애면서 하루를 흘려 보냅니다. 건조한 하루가 또 지나 갑니다. 그래도 이런 날은 반대로 불행하지는 않은 날입니다.  다만 지루한 날의 연속일뿐 입니다.


나는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평탄한 매일의 어느 날에 숨어 드는 하루, 그런 하루는 못견디게 아픕니다. 중병에 걸린 것처럼 온몸이 고통스럽습니다. 왜 일까요? 나는 왜 행복보다는 아프고 슬픈 것을 더 빨리 알아차릴까요?

언제나 나의 소원은 행복입니다. 작은 것에도 행복하고 싶습니다. 그런데도 노래가사처럼 "사는게 뭘까? 이런 인생 정말 괜찮은 걸까? 너무 외롭다. ..." 처럼 내 숨이 헉하며 멈추게 만드는 노래가사가 내 이야기만 같아 심장을 아프게 합니다. 버티는 삶은 이런 날들의 연속입니다. 무의미한 날과 아픈 날의 연속이 이루어 낸 삶은 그래서 지겹도록 외로운 삶입니다.


나는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자신도 있었고 가치관도 그다지 욕심스럽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니 필시  그리 살게 될 것이라 자신했더랬습니다. 지금 조금 버거운 건 내일부터 행복할 준비의 시간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내 행복한 시간의 한 획이 되어 줄 이가 사라진 지금, 어떤 확언도 믿음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아프기만 한 날은 꼬리를 물고 나를 파고듭니다. 피할 수 없는 해일처럼, 바닷가 최전선에서 맨몸으로 그 해일을 뒤집어 쓰는 삶이  나인것만 같아 서럽습니다. 그래서 나는 매일이 불행합니다. 이 삶에서 도망치고 싶은데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원망을 쏟아낼 대상초차 없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나는 행복하고 싶었습니다.

바보처럼 이상적인 행복만 찾느라 등뒤까지 찾아온

행복을 깨닫지 못하는 걸까요?

아들이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장학금을 받고, 아버지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무사히 병원에서 퇴원을 했습니다. 나 또한 뒤숭숭하던 직장 생활에 무사히 안착했으니 이것이 행복일까요? 기쁘고 즐거워야하는 일들이 주위에 가득한데 왜 마음은 땅바닥에 붙어 심장가까이로 돌아올 생각을 않을까요?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던 눈물샘은 또 왜 다시 고장이 날까요? 멍한 상태에서 고장난 눈물샘 때문에 당황스러워하는 지금이 나는 참 싫습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나는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언제나 행복이 나의 화두였습니다. 아직 해결하지 못해 입에 붙어 있는 화두 말입니다. 나에게 그것은 과욕일까요? 아니면 언젠가는 해결될 과제일까요?


절절히 사랑하는 연인이 잠시 이별중인 글을 읽었습니다. 두사람의 아픈 마음이, 그들의 그리움이 글속에 잘 묻어 있었던 까닭인지 주인공의 눈물을 내가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깨달아버렸습니다.

  '그래도 좋겠다. 기다리다보면 만나지기는 할 너희들이 부럽다.'


나는 겨우 꿈속에서라도 한번 나타나 꼬옥 안아주며 "잘 지냈니?" 물어봐 주기를, 그의 체온과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매일 기도합니다. 꿈속에서라도 만날 수 있는 그런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바보처럼 이제야 알아챕니다. 그러면 참 행복하겠구나 기대하고 있었다니. 웃기고 서글퍼 그래서 눈물이 났던 거였습니다. 내 행복은 환상었는데, 작고 조약하지만 쉽지도 않은 그런 희망이었는데 말입니다.


행복이 별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오늘의 나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나는,


아직도 행복하고 싶습니다.

여전히.

작가의 이전글 초여름 밤, 꿈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