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를 많이 탄다.
철없던 어린 시절에는 '추운 나라로 이민가야지.'라며 다짐하곤 했다.
4월 중순경이 되면 집안 곳곳에 보관해 둔 선풍기를 찾아 사용할 수 있도록 손질하는 건 나의 여름맞이 첫 일상이었다. 목마른 놈이 우물판다고 더운 놈이 선풍기를 준비하는 격이다. 5월이 되면 풀가동 선풍기를 내 몸에서 살짝 비켜 켜두고 잠이 든다. 6월부터 선풍기의 머리는 정조준 내 몸을 향한다. 그렇게 긴 시간 동거동락하는 선풍기는 나의 최애 가전제품이었다.
더위를 많이 타니 당연 여름이 싫다. 여름 휴가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더운데 땀흘리며 다니는 것 자체가 곤혹이다. 운동도 찐득하게 땀이 옷과 피부를 밀착시키기 시작하면 영 밥 맛이다. 그러니 운동도 별로 내 적성은 못된다. 그런데 또 여행은 좋아해서 휴가시즌보다는 가을의 막바지나 겨울에 떠나게 되는거다. 추워 몸을 웅크리고 다녀도 좋다. 땀만 흘리지 않으면 된다. 그러고 보니 여름이 싫다기 보다 땀이 싫어서 덩달아 여름까지 싫어졌다고 봐야겠다.
물론 아주 어린 시절에는 여름이면 외갓집에서 지천으로 울어대는 매미를 잡겠다고 산으로 들로 부지런히 뛰어 다녔다. 여름도 내 곤충채집의 열정을 말리지 못했더랬다. 그런 시절도 있었다.
6월 중순의 어느 하루,
나는 며칠째 처지고 아픈 몸을 원인도 찾지 못하고 슬슬 짜증이 올라오는 중이다. 차라리 확 아파버리면 약 먹고 쉬기라도 하련만 온 몸이 가라앉고 은근히 아픈 이런 컨디션은 마음을 괴롭힌다. 딱 식음을 전폐하고 싶어지는 그런 날이다. 벌써 며칠째 이유없이 우울하다. 괜히 눈물이 나고 그러다 '미친...'이라고 중얼거리며 정신에게 군기를 집어넣는다. 오래가지 않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작년 이맘때도 그랬던 거 같다. 연례행사가 되려는 모양이다.
2년반 전 이맘때부터 피곤하다고 노래를 불렀던 사람이 있었다. 갱년기가 오나보다했다. 남성 갱년기는 여성보다 더 심하게 오는 경우도 있데서 그러려니 넘기고 기분 맞추기에만 신경을 썼더랬다. 그렇게 피곤하다는 사람을 일으켜세웠다. 기분전환이 필요할 거 같았다. 그 한더위 8월 중순이었지만, 나는 17년만에 처음으로 둘만의 여행을 떠났다. 땀이 온 몸에 흘러 찐득하고 불쾌해도 마냥 좋았다. 남편은 지친다며 자꾸만 벤치를 찾아 앉았다. 그래도 좋았다. '이제 자주 같이 와야지.' 마음 먹었고 결혼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너무도 뜨거워 숨이 막히던 그 여름날, 행복해서 가슴이 따끔거리던 그 날을 뒤로 하고 30일 후, 그가 떠났다. 그가 사라진 지난 시간은 여름날의 기억이 지배하며 더 큰 슬픔으로 나를 울린다.
그래서 나는 여름이 싫다.
너무 더워 땀으로 찐득해진 몸도 짜증이 나지만, 잊고 지내던 슬픔이 다시 차 오르는 계절이라서 더욱 싫다.
올해도,
나의 이른 여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