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완뚜 May 04. 2023

서툶일까 인색일까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하고 다양해지고 있다. 덕분에 다름에 대한 이해와 관용이 미덕이 되었다. 맞는 말이다. 다름과 틀림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그래서 다르다는 것은 인정받아야하고 존중되어야 한다. 물론 모든 면에서 그렇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또한 지금부터 내가 얘기하는 부분도 다르다는 것이 미덕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살아오다보면 유독 타인에게만 인색한 이가 있다. 본인은 존중받고 대우받는 것에 익숙하고 즐기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나 존중은 관심밖이다. 물론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좋은 일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기위한 첫걸음은 본인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라고 주장하는 바다. 그러나 본인에 대한 사랑만 있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잊고 산다면 어떨까? 그런 사람과 배려가 몸에 밴 사람과의 만남에서 불균형이 생긴다. 주고 받 것이 서로 잘 맞으니 된거 아니냐고 생각할수도 있겠다. 말하자면 금상첨화 아니냐는 식의 생각이 가볍게 떠오르기도 하다.


사람은 이기적인 본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자학적인 사람도 그 뿌리를 찾아보면 더 잘 나고 싶은 욕심에서 자학성이 생기는게 아닐까? 그러니 배려심이 많은 사람도 본인의 배려심만으로 만족하며 살 수 없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도 무조건적인 이타심에서만 시작되는 활동은 없다는 거다. 적어도 봉사활동으로 본인의 만족감이 어느정도 충족되기 마련이다. 그런 것처럼 배려 또한 자신이 받고 싶기에 건네는 일종의 뇌물적 성향일 수도 있다.

내가 건낸 배려를 백프로 돌려받기를 바라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수십번에 한번의 배려는 기대하게 되는게 사람의 심리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보니 이런 것들조차 내 생각의 편파적인 단면성일지도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다.


각설하고 나는 배려하는 것에 익숙하다. 적어도 나는 누군가에게 존중받고 배려받기를 바란다. 그러하니 나도 타인에게 조금은 배려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타인이 내게 어떻게 해 주기를 바랄지를 생각하고 타인을 대하는 경우가 많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도 생기기는 하지만 말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하면,

음, 받는 것에 익숙해 나누는 즐거움을 잊지 말자는 거다. 나누는 건 익숙해지면 받을 때보다 즐거움이 큰 활동이 된다. 오히려 받는 것이 부채로 느껴지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나누는 즐거움, 생각보다 별거 아니다. 지인과의 만남에 커피 한번 더 사고, 이야기 끝에 너가 옳다는 칭찬 한번 더 해주고, 그의 슬픔에 어깨 한번 두드려 주는 것. 쉽지만 잘 되지 않는 것들이다. 이런 일들은 생각보다 익숙해 질 때까지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타인에게  인색한 사람은 나쁜 본성때문이 아니라 서툰 사람이며, 따라서 노력이 필요한 거라는 생각을 한다.


오늘 문득,

억울한 생각이 든다.

배려가 부족한 사람에게 쏟아 붓던 애정이 아깝게 느껴진다. 일방적인 애정인 것만 같아 속이 상하다. 쓴소리가 하고 싶어진다. 단지 쓴소리라는 건 내게도 듣기 싫은 것이니 상대방에게 하지 않는 것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허공에 발길질이다. 글로 쏟아 붓는다.


내 주위에 서툰 사람이 몇명 없으니 그나마 다행인 건가.

작가의 이전글 눈물의 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