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상 속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단연 쥐잡는 날이라거나 쥐잡아 가던 학교라거나 그런 중류의 쥐와 관계된 것이다.
나는 꽤 대범한 면이 있고 들판의 곤충은 온통 내친구들이다. 조꼬만한 녀석들의 꼬물거리는 모습이 그렇게 귀엽더라. 여자라면 대부분 징거럽다거나 무섭다고하는 곤충을 너무 사랑한다. 어린 시절의 환경으로 인한 성향이리라 싶다.
내 글에 자주 등장하는 외갓집 전경 중 한가지 추억이 바로 외사촌 오빠의 자전거 뒷자석에 타고 엉덩이에 멍이 들 정도로 덜컹이며 숲길과 강변을 달려 매미랑 잠자리, 메뚜기를 잡았던 추억이다. 잘 잡는 노하우는 외사촌오빠가 전수해 줬었지. 그래서 어릴적부터 보고 놀던 거라 커서도 거부감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담이지만 그때의 경험으로 아들도 편견없이 키우고 싶어 아주 아기일때부터 파충류나 곤충등 다양한 체험에 노출시켰더랬다. 덕분에 자꾸 뭘 키우자고 해서 고생은 했지만.
다시 돌아가서, 그렇게 곤충도 두렵지 않던 나는 산 밑에 위치한 사무실에 근무하며 숱하게 만나는 지네도 불편하지않게 처리한다. 호들갑 떠는 분들을 물리고 당당히 해결해주는 해결사라고나 할까.
그런 내가 죽어도 싫은 게 하나 있다. 다들 눈치채셨겠지? 칙칙한 회색몸통에 가늘고 긴꼬리와 오물거리는 입을 가진 쥐가 그것이다.
며칠전 쥐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번 직장의 최고 수혜중 하나가 아주 깨끗하고, 첨단 시설의 화장실이다. 그 화장실에 락스 청소를 끝내도 냄새가 나는 이변이 생겼다. 도대체 정체를 알수 없는 지독한 소변 냄새에 어리둥절하던 며칠 후 사무실 공사 중이던 사장님이 화장실에 물 뜨러 갔다가 쥐를 봤단다. 선반 안 온수기 위에 앉아 눈을 마주보며 도망도 가지 않는 쥐를 설명하는데 아이고 큰일났다는 생각만 들더랬다.
쥐 잡기 작전이 시작되었다. 물론 이 작전에서 자의로 나는 배제되었다. 작전참모총장이자 행동대장이 일단 찍찍이를 구해왔지만 실패, 멸치만 모두 도난당했다. 쥐틀도 실패, 결국 쥐가 갉아 먹은 비누랑 세제가 든 장을 비우고 문을 열어 두었다. 복도 문도 활짝 열어 이제는 집냥이가 된 길냥이들이 들락거리게 두었다.
아뿔싸,
거듭된 시도는 모두 실패, 공사 중이던 사무실에 녀석이 자리를 옮긴 모양이다. 테이블 위의 사탕 바구니가 털렸다. 어지럽게 흩어진 사탕의 잔해, 조용해진 사무실에서 내 의자 뒷쪽에서 나는 빠작거리는 소리, 소름 돋는 상황이 종일 계속 되었다.
작전참모총장님은 하필 이런 시국에 일본 여행 중이시다. 급하게 외부 인력 투입, 방역사장님이 달려와 사무실 곳곳에 쥐약을 수십개나 놓는다. 놓고 돌아서는 동안 훔쳐가는 녀석들의 간 큰 행보에 놀라며 문을 잠그고 퇴근했다.
드디어 잡혔겠지. 이제 조용하겠지 싶었던 다음날 출근 길, 약은 모두 물고 가고 한알만 남아있다. 잘됐다 싶었는데 여전히 약하지만 움직이는 소리가 난다. 작전참모총장님이 오실 때까지 보이지 않는 쥐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날이 밝았다.
기다리는 합참님도 돌아왔다. 다시 전쟁 시작. 머리를 맞대고 작전 회의. 결론은 그래도 쥐덫이란다. 내가 보지만 않을 수 있으면 된다는 조약을 건다. 역시 쥐틀이 답이었다. 전쟁은 완벽하게 인간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다행이다. 낮시간은 대부분 혼자 지내는데 쥐와의 동거는 엄청난 압박감을 동반했었다. 남들은 흥미진진했고 나는 미칠지경이었던 전쟁이 끝나고 축하를 기분 좋게 받는다.
지휘관이 잡힌 쥐를 보여주겠다는 걸 거부한다. 어디에 버리실꺼냐고 물으니 대답이 없다. 잠시 후 아직 전쟁이 끝났다는 소리를 듣지 못한 청년 하나가 달려와 우리 도도한 냥님이 쥐틀에 잡힌 쥐를 잡았다고 전한다. 뒤에서 지휘관이 크게 웃는다. 아니 이녀석은 잡으랄 때는 안잡고 뭐냥. 도도하고 우아해서 이름도 그렇게 지어줬더니 도도야 너 뭐하냥.
길고 길었던 전쟁은 도도의 작은 해프닝과 함께 즐겁게 막을 내렸다.
믿거나 말거나.